지난 추석 연휴에 두편의 영화를 보았습니다. 하나는 "연애소설"이었고, 다른 한편은 "노스탤지아"였지요. 추석연휴같은 때에 영화를 보러간다는게 원래 좀 그렇지만, 둘다 원래 의도하던 영화도 아니었습니다. "연애소설"을 본 메가박스에 갈 때에는 "어바웃 어 보이" 생각을 하고 갔었고 (표가 없었어요), "노스탤지아"는 "희생"을 하는줄 알고 갔으니까요 (시간표를 잘못 안거죠 ^^).
요 몇해동안 영화를 꽤 많이 본 편입니다. 사무실이 메가박스 바로 근처였던 덕도 크고, 부산, 전주, 부천 세 개 영화제를 거의 꼬박꼬박 다녔으니까요. 작년이던가 재작년이던가 연말에 한번 세보니까 거의 일주일에 한편씩은 꼬박꼬박 본 셈이더군요 (그게 영화제 영화들은 빼고니까...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영화 좋아해요?"라는 질문을 가끔 받으면 뾰족하게 할말이 없는건 예나 지금이나 다를바가 없습니다. 무슨 음식 좋아해요? 맛있는거... 이런 식이 되는 것 같습니다. 말장난 같기도 합니다만, 제게는 그게 진짜예요. 흔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고 불리는 것들 중에도 열광하는 영화가 있고, 소위 아트 필름(?)에도 그런 게 있으며 양쪽 모두에게 전혀 흥미를 끌지 못하는 영화가 있구요. 전쟁영화, 호러영화 같은 류는 대체적으로 안좋아하는 편이긴 합니다만, 피터 잭슨의 몇몇 영화들은 아주 좋아하니까 꼭 호러라고 다 배제하는 것도 아닌 모양이고, 네, 실상은 저도 제 취향을 잘 모릅니다. 그게 정답이죠. --;
미우나 고우나 메가박스는 어떤 의미로는 좋은 극장인건 분명합니다. 편한 의자도 그렇고, 엔드 크레딧을 자르지 않고 끝까지 틀어주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상영관이 많다보니 좀 마이너한 영화들도 (단 며칠이지만) 제법 걸어주기도 합니다. 다만, 바로 그 근처에서 일하다보니 낮 시간에 잠시 들러서 표를 미리 사둘 수 있었던 예전과는 달리, 영화 보러가서 표사는 일이 꽤 힘이 들더군요. 줄도 굉장히 길고... 줄이 길면, 줄이 줄어들기를 기다리면서 어떤 영화를 볼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보러간 영화가 매진이면, 다른 영화중에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꽤 되는 편이죠. "연애소설"도 그렇게 보게된 영화니까요.
저는 영화 보러갈 때 꽤 까다로운 편에 속하기도 합니다. 일주일에 한편 꼴로 영화를 보던 적도 있으면서 "영화를 까다롭게 고른다는 말"이 제가 생각하기에도 좀 웃기기도 합니다만, 한편으로는 정말입니다. 제가 싫은 영화는 "절대" 안보는 쪽에 속하니까요. 일행이 그 "싫은 영화"를 보자고 고집하면, 저는 그 시간에 밖에서 기다리거나, 아니면 각자 다른 영화를 보고 끝나고 만나자고 합니다. 대신 일단 보러 들어간 영화에 대해서는 꽤나 관대한 편이기도 합니다. 이왕 보러 들어갔으면 즐겨야죠.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물게는 배신을 당하는 경우도 있긴 하죠. (부르르... "프랙티컬 매직"이 대표작입니다. 그 후로 산드라 블록을 예쁘게 봐줄 수가 없지요. 그 사람 죄는 아닙니다만)
"연애소설"은 꽤 예쁘게 찍으려는 흔적이 보이더군요. 남자 주인공의 취미가 사진으로 되어 있으면서 여러컷의 "잘찍은 사진"이 드러나기도 하고 (물론 제 생각입니다. 저의 사진 취미라는 것이 초보 중에 왕초보라는걸 염두에 두시길...) 스크린에 잡힌 영상도 꽤나 예쁜 색깔, 예쁜 구도를 잡으려고 노력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 마다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래도 제법 예쁜 얼굴인 여주인공도 둘이나 나오구요. 그 중 하나는 정말 "순정만화 타입"이랄 만큼 청순가련에 죽을 병을 앓고 있기까지 합니다. 암튼 나름대로 잘 봤습니다. (네네네... 저 이은주 팬입니다. ^^)
"노스탤지아"는 러시아의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입니다. 한 10년쯤 전에 우리나라에 "예술영화 바람"이 "휘몰아쳤을 때" 그 중심에 있었기도 하지요.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이란 말은 뭔가 심오한, 알 수 없는, 지루한, 예술 영화를 상징적으로 대표하기도 할겁니다. 그리고 저는 그때 당시에 한참 "씨네마 데끄"라는 곳을 다니던 애송이 영화광의 끝자락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스탠리 큐브릭이니 피터 잭슨이니 타르코프스키니 하는 감독들의 영화를 모두 그 시절에 만났습니다. 네임 벨류는 피터 잭슨이 가장 떨어집니다만, 사실 그때부터도 전 피터 잭슨이 제일 좋았죠. ^^
누가 가장 좋고를 떠나서,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제게 또 뭔가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 유명한 "희생"은 저 역시 보다가 졸았습니다만, 당시에 보던 "필름 아트"라는 책에 씌여있던 "미장센"이란게 이런 거구나하는 나름대로의 이해를 준 최초의 영화였습니다. "장면이 아름답다"라는 걸 알았고, 빛과 어둠이란 것이 스크린 위에서 저렇게 쓰이는구나 하는 놀라움이 있었죠. 이런 놀라운 발견과 더불어 잠들 수 있는 영화라니.. --; 참고로 "필름 아트"는 최근의 "네멋대로 해라"라는 미니시리즈에서 복수가 밑줄쳐가며 보던 바로 그 책입니다. 슬쩍 봐도 알겠더군요. 저도 꽤나 정독했었어요 그 시절에...
"거울"이야기를 안할 수 없겠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타르코프스키의 영홥니다. 모르죠. 지금 보면 또 어떨지는 사실 자신은 없습니다. 그 시절엔 분명히 가장 좋았었습니다. 문제는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겁니다. 그 영화, 지금은 물론이고, 그때도 내용이 뭔지 제대로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이런 저런 이미지들이 나오고 흐르고 겹쳐지고 바뀌면서 어느새 영화가 끝납니다. 그런데도 좋더라구요. 처음 본 순간에 (비디오로 봤죠) 다시 돌려서 보고 또 보고, 앉은 자리에서 밤새워 세 번을 봤습니다. 그 뒤에 한번 더 봤고... 언젠가 정성일씨를 만날 일이 있었는데 이런 왜 좋은지 모르겠는데 좋은 영화에 대해서 물어봤었죠. 그다지 뾰죽한 답은 없으시더군요. 다만, 그런 일이 있다는 수긍을 얻었죠.
이제 다시 그날 본 영화 "노스탤지아"로 돌아와야겠군요. "희생"에서 미장센의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느꼈다고 했죠? 이날 "노스탤지아"에서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그렇게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느릿느릿 상하로, 그리고 좌우로 움직여나가는 카메라가 공간을 "만들어내"더군요. 이전까지의 화면의 아름다움이라면 "정지된 화면"의 구도와 색감이었다면, 이번엔 달랐던거죠. 구도가 변형되어 나가면서 말을 건넨다는 느낌을 받았으니까요. 예쁜 화면에서 예쁜 화면으로 가는 과정이 아닌겁니다. 이제까지 왜 이런걸 실감하지 못했을까...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거울"이란 영화를 보면서, 저는 내내 제 자신에 대한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예전의 기억, 내가 느끼는 것들, 이런 저런 생각 속에서 영화가 흘러가고 보여지고 그랬더랬습니다. 정말 "거울"을 보는 것 같았지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어떤 좋은 작품은 그 자체가 좋은 것을 가지고 있어서 그걸 보여주지만, 또 다른 좋은 작품이란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내 안의 어떤 것을 이끌어낸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제게 있어서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은 후자의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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