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19일 수요일

발리 단상 4 - 아저씨, 당신은 진정 누구신가요

* 아저씨, 당신은 진정 누구신가요.

코마네카 들어가는 첫날, 이부오카에서 점심을 먹고 리조트 셔틀을 시간맞춰 타기 위해 코마네카 리조트로 왔다. 차는 도착했지만 아직 탈 사람이 오지 않아 잠깐을 기다렸는데, 드디어 들어온 것은 일본인으로 보이는 아저씨 한 사람. 그런가 보다 하고 차를 타면서 가볍게 인사를 했다. 탕가유다로 가는 차 안에서 안에 비치된 잡지를 보니 스미냑 레스토랑 추천 리스트 비슷한 것이 났길래(뭐 리스트 자체는 거의 다 유명해서 이미 알고 있는 곳들이었지만) 남편에게 “**도 있고, ****도 있고.. 아, %&%%도 났네”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아주 작게 “아융테라스.”라는 말이 들린다. 낮고 흐릿한 느낌의 목소리. 헉 뭐야 싶다가, 앞에서 레스토랑 얘기를 하니 알아듣고 한마디 했나 싶어 모른척 하고 말았지만 어쩐지 느껴지는 다크 포스였다.
그 분과의 인연은 계속되어 리조트 셔틀을 탄 몇 번 중 대부분을 같이 탔으며, 아침에 조식당에서, 썬베드를 차지 할 수 없었던 점심의 메인 풀 위 식당에서 만나게 되었다. 일행이 없이 계속 혼자 다니는 사람. 게다가 자꾸 눈이 마주치게 되는 위치라 남편과 나는 나름대로 곤란해졌다. 서로 아는 척을 할 것도, 대화를 나눌 것도 아니고 그냥 가볍게 예의만 차리고 스쳐지나가면 편할 낯선 사람의 얼굴이 눈에 익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그런데다가(전혀 모르는 사람을 이렇게 설명하면 예의없지만) 인상을 설명하자면 만화 캐릭터로는 타카하시 루미꼬의 ‘우르세이 아쯔라’의 체리의 느낌이고(아래 이미지 참조), 더 많이 아실 캐릭터로는 ‘Shall We Dance’의 아오키씨를 일단 노화시킨 후 좀 살집있게 불려서 눈은 좀 작게, 그리고 음흉한 기운을 불어넣은 정도의 느낌이라, 바라보면 그렇게 즐거운 분은 아니라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정말 그분의 ‘다크 포스’(^^)를 제대로 본 것이 아니었다.
3일째 되는 날 나와 삼돌군은 전날 썬베드가 없어서 메인풀에서 수영을 못한 한을 풀러 일찍 메인풀쪽으로 나섰다. 다행히도 멀리서 보니 자리가 있었고, 우리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수영장 쪽으로 다가서는데... 그렇다. 거기에 그가 있었다. 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는 사정상 직접 사진을 못 찍었으니 상상하기 쉬우시도록 자료를 덧붙여 보겠다.

아시다시피 탕가유다의 수영장은 이렇게 생겼다.



표시한 위치에 다음과 같이 생긴 분이,



이러한 자태로 누워계시다면....? (그래. 왼팔은 몸에 붙였고 다리는 꼬지 않았지만.)



게다가 계곡 쪽이 아니라 사람들 쪽을 보고 있는 것은 도데체 왜인거야!!!
이쯤 되면 다가가서 ‘아저씨, 당신은 정녕 누구신가요?’ 이렇게 묻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우붓의 시원한 계곡 풍경에 끼어들어간 위와 같은 장면이 민망하기도 하고 보기 썩 좋지 않은지라 썬베드에서 거의 내내 책만 보다가, 나만 손해인 것 같아 기분이 나빠졌다. 그런데 수영장에 있던 외국인들이 하나 둘 헤엄쳐서 수영장 가로 가는 것이 아닌가. 물론 그 아저씨 주변은 포스때문에 다들 범접하지 못하였으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영장 가에 가서 앉으니 좀 낫다. 최소한 한 사람만 떡하니 눈에 띄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 틈을 타서 수영장에서 몇번 첨벙거리고는 부랴부랴 빌라로 돌아왔다. 그 이후로는 그 분을 다시 보지는 못했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상하고도 특이한 아저씨였다. 일본 어디서 무얼 하시는 누구일까. 왜 여기서 저러고 있는 것일까.
참으로 다시 못 볼 유니크한 풍경이었으나 별로 다시 보고 싶지는 않은 풍경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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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ulip  2005/11/08  
역시, 로또당첨으로 무인도나 프라이빗 비치 딸린 빌라로 가는 것이...;
저 체리 알아요. 저런 그림같은 풍경에 그런 생물체가 있었다는 건
저 풍경에 대한 무례라고밖에. -_-;; 




 bluekid  2005/11/09  
답글 읽고 한참 웃었어요.^^
맞아요 Tulip님 말씀이 제가 길게 쓴 저 글의 한줄 요약판! 




 앨리스  2005/11/28  
아아;;
휴양지로 혼자 여행가는건 정녕 커플제국원에게만 허락된것이란말입니까 ㅜㅜ
(체리와 그닥 다를 바 없는 미약한 생물체.. 흑 )

2005년 10월 16일 일요일

발리 단상 3 - 빌라 유정, 빌라 유감

* 빌라 유정, 빌라 유감.

탕가유다의 풀빌라에서 잡지를 읽다가 갑자기 눈에 띈 광고! ‘독일의 기술력과 발리의 스타일!’ – 발리 전통식 나무집(큰 것은 빌라라고 해도 되겠다)을 지을 수 있는 Kit이다. 원래는 지을 인력까지 다 제공된다고 하는데 관련 기사를 보니 싱가폴이나 인근 국가의 고객들이 구입해서 자국으로 돌아간 후 구할 수 있는 값싼 노동력을 고용해서 짓는다고 한다. 제일 작은 사이즈가 50 제곱미터였나 30 제곱미터인가 하는 크기인데, 잠시 경기도 어딘가에 땅을 사서 작은 발리식 집을 짓는 상상을 해 본다.(물론 땅을 살 돈 따위 있을리가 없다.) 가을이 오고 있고 한글의 겨울은 꽤 춥다는 사실에서 가슴을 불태우는 이 이야기는 끝이나게 되어있지만 꿈치고도 참 달콤한 이야기 아닌가.:) 어릴적 읽은 미우라 아야꼬의 책에서 작은 땅을 사고, 친절한 목수를 찾아내어 다다미 몇장의 작은 집을 지었다는 얘기를 본 이후로 곰 세마리의 작은 집에 대한 로망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음을 또 한번 깨닫게 된다.(곰 세마리에 대한 로망은 없다.)



모던한 스타일이 아닌 초가지붕의 빌라나 그것보다 더 허술해 보이는 구조물들의 매력은 안팎이 통해있다는 점일것이다. 어디에 있어도, 밤이 되어도 찌는 듯한 ‘우리 동네’와는 달리 가릴것은 가리되 들어올 것은 들어오고 나갈 것은 나가게 하는 구조인 집이면 시원한 여름 저녁을 보낼 수 있는 ‘저쪽 동네’이니까. 거기다 모기까지 없다면! 그건 정말 꿈의 실현이겠구나.
그러나-.
로망은 로망일 뿐... T-T
사실 빌라는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진 굉장히 폐쇄적인 구조이고, ‘사생활 보호를 위해’ 담과 벽으로 둘러쌓인 구조다. 그런 주제에 서로 붙어있어서 이웃이 있다는 것을 모르거나(혹은 이웃이 없거나), 이웃의 가족 구성원과 사생활까지 알게 되거나 둘 중 하나다. 우리는 작년 에바손 사태를 거울삼아 되도록 투명한 이웃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구조상 그러기 어려울 때도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뭐, 판단은 또 우리의 이웃들이 했겠고. 자본주의와 건축가를 탓해야지 어쩌겠냐만서도, 그 말만으로는 넘길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탕가유다에서 두째날 저녁, 옆집에는 한국인 가족이 들어왔다.(혹은 그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나) 활기찬 어린이(어린이들이었을지도)와 부모님. 뭐 그렇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식사를 할 때면 정말 말이 없는 우리는 아주 묵묵하게 빌라에서 밥을 먹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옆집 남자아이의 목소리에 잠을 깬다. 7시 반 정도밖에 안됐는데,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니라고 원망하며 다시 잠을 청하는데 이 녀석 좀처럼 잠잠해지지를 않는다. 분노게이지가 서서히 상승한다. 졸린곰이 왜 졸린곰이겠는가.--; 이 분노는 옆집 어린이가 빌라 안에 있는 엄마에게 화를 내며 고함을 치는 소리에 결국 폭발하고 말아,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쌩하니 빌라는 달려나가 옆집 담에다 대고 할 수 있는 한 가장 싸늘한 목소리를 내게 만든다. ‘저 옆집인데요. 너무 시끄럽거든요.’
묵묵부답.
조용해 진 것으로 봐서 아이는 좀 놀란것 같다. 하긴 옆집에 사람이, 그것도 한국 사람이 있을 줄 몰랐는데 갑자기 그러면 안 놀라긴 힘들겠지. 조금 미안해하며 방에 들어와서 높아진 혈압을 다스린다. 역시 리셉션쪽에 컴플레인을 하는게 더 좋은 방법이었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화를 내고 나면 스스로 내내 찜찜해하는 스타일이라 그날 오전 내내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시간이 좀 지나자 다시 쾌활하게 웃고 떠드는 소리가 좀 작게 들리는 것에 위안을 받는다. 아이는 충격에서 회복하고, 나는 약간의 죄책감과 높아진 혈압에서 회복되고.
생각해 보면 모두가 당연한 일이다. 빌라 구조상 소리가 나면 들리는게 당연하고, 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노는게 당연하고, 일상을 도피해 온 30대는 단 잠을 깨우면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한 것. 그러니 누구를 탓할수도(모두를 탓할수도 있지만 그럼 다 같이 서로 돌을 던지는 수밖에 ^^), 스스로를 자책할 필요도 없다고 스스로 되뇌였다. 소음 관련으로 두번 귀찮고 열받는 일을 당하고 보니 다음 여행에는 빌라 제외를 외치고 싶어지고, 이제 동남아는 그만 갈래(몇 번이나 갔다고..--;)라는 생각까지 들지만 어쩌겠는가. 역시 따뜻한 남쪽 나라는 그립고, 풀빌라가 좋은 것을.



사진은 언제나 즐거운 풀빌라 놀이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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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이 후기]
위 후기는 마님이 쓰고 계신 것이라는 얘기는 이미 전했고, 동시에 아쿠아라는 여행 사이트에도 올라가고 있지요. 그런데 아쿠아에 올라간 이 후기 아래에 바로 그 옆 빌라에 투숙하셨던 분이 댓글을 다셨습니다. 그래서 뒤늦게 나마 정중한 사과의 말씀이 서로 댓글로 오갔습니다.
안그래도 그쪽도 아쿠아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했었는데, 그쪽 분들도 우리 얘기 아쿠아 후기에 올라오는거 아니냐는 얘기들을 하셨다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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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ulip  2005/11/08  
사진으로 봐선 이쁜데, 그런 불편이 있다니 부러움이 2.75% 하락하는군요. (그래도 부러움;)
그나저나 네트는 정말 광대하지 않습니다. -ㅅ-; 




 앨리스  2005/11/28  
마님은 아무래도 적당히 달구어진 돌에 지지는걸 좋아하시는게 아닐까요 ^^
주말에 온천욕을 하고 왔는데 그곳은 노천탕옆 정자의 바닥이 옥돌로 되어있어서
비치타올 하나 위에 걸치면 겨울임에도 한숨 잘수 있을정도로 쾌적하더라구요^^

2005년 10월 14일 금요일

발리 단상 2 - 우붓에서 길을 잃다.

* 우붓에서 길을 잃다.

비오는 서울을 떠나 발리에 도착해서 집을 찾아 나오니 이미 꽤 늦은 시간. 시아룰을 만나 차를 타고 우붓으로 갔다. 버스-비행기-비행기-자동차 여행은 못할 건 아니지만 괴로운 것이라 30대의 두 사람은 비유쿠쿵에 도착하자마자 그냥 녹아서 흐물흐물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어린이들은 자면서 키가 크고, 어른이 되면 자면서 피로로 녹아버린 몸을 인간 형태로 만들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법인지도 모르겠다. 닭소리에 잠을 깨 보니 실제로 우리는 우붓에 와있었다. 닭들은 우는게 아니라 절규하는 중이었는데, 그때는 그들이 릴레이로 샤우트 창법을 구사한다는 것을 모르던 처라 마냥 신기해하며 “진짜 우붓에 왔네”라고 조금 즐거워했다.



비유쿠쿵의 ‘바나나 팬케익’이라는 이름의 바나나전과 프렌치 토스트로 가볍게 식사를 마치고 아쿠아 지도를 든 채 잠깐 바깥을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그냥 ‘잠깐’이 계획이었는데, 더티덕에서 몽키 포레스트 로드로 이어지는 길을 생각보다 너무 빨리 발견하는 바람에 우리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언덕을 걸어올라가며 아쿠아 리뷰와 후기에서 보던 가게들과 숙소들을 발견하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해가 더 높아지고 더워질 무렵엔 다음 숙소인 코마네카 탕가유다로 갈 셔틀을 탈 코마네카 리조트도 발견해서 셔틀 시간을 확인하며 아쿠아 라운지에서 음료수도 마셨다.



흠, 그때까지는 흐뭇하고 좋았는데 모든 걸 너무 심플하게 생각한 두 사람의 우붓 경험이 너무 미진하다고 하늘이 느끼신 탓인지 Dewista Rd.를 따라 하노만 로드를 지난 것 까지는 좋았는데, 어딘가에서 모퉁이를 잘못 돌고 어디선가의 불운이 결합하여 길.을. 잃.었.다. 우리집 삼돌군은 방향치이고 나는 평범한 인간인데, 어쨌든 둘의 머리로는 도저히 숙소를 다시 찾아낼 수 없는 상황. 우붓 주민들도 우리에게 협조해주지 않아 한 사람이 북쪽을 가리키면 다른 사람은 반대편이라고 말해주는 와중에... 우리는 방향지시를 듣고도 좌-우-우였는지 좌-좌-우로 도는 것이었는지를 헷갈리고 있었다.--; 시간은 정오 정도. 햇살은 마음껏 따갑고 우붓의 작은 골목길들에는 가려줄만한 나무가 없었다. 그렇게 헤메다가 겨우겨우 두 사람 다 빨갛게(맛있게?) 익고, 마님의 짜증이 폭발하기 직전에야 비유쿠쿵을 찾을 수 있었다. 젠장~ 더티덕부터 찾았으면 간단했는데.

어쨌든 우붓의 조용한 주택가 길들에게는 좀 힘들었지만 만나서 반가웠다는 인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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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ulip  2005/11/08  
길을 잃었다는 상황을 빼면 정말 그림같은 장면이어서 너무 이쁘네요.
덕택에 건진 마지막 사진에 대해, 혹은 리를오라버니의 길치능력에 찬사를.;;

2005년 10월 13일 목요일

발리 단상 1

이번 여행 후기는 마님께서 쓰고 계셔서, 제가 따로 쓰지는 않을 예정입니다. 대신, 마님의 승인하에 제홈에도 퍼다 놓도록 하겠습니다. ^^ 따라서 이하의 이번 발리 여행 후기는 모두 마님이 모든 권한을 (물론 평소에도 모든 것에 대한 모든 권한은 마님께 있지만) 리저브드 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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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리에 가기로 했다. 두둥.

사실, 이것은 오래 전에 정해진 것이다. 작년 추석 연휴를 노리던 우리는 가루다와 에어파라다이스의 콤보 공격과 조금 늦은 예약 덕으로 싱가폴 항공의 강 펀치까지 맞아 발리가 아닌 다른 목적지를 물색해야 했고 이러저러한 끝에 코사무이로 갔다. 우기였고 비 덕에 어둡고 추운 기억도 남은 여행이었다. 뭐 다 나빴을리는 없지만. (그렇다면 휴가와 사무이에게 너무 미안하지 않은가!)



그러니 올해는 일찍 싱가폴 항공을 예약하자라는 것으로 여행 준비가 시작되었다. 발권을 7월 말에 했으니 모두 순조로울 수도 있었는데, 역시 젠장. ^^ 원하는 시간의 덴파사-싱가폴 구간은 웨이팅에서 여행시작 3일 전까지 풀리지 않았다.(다른 시간을 발권한 상태로 기다림) 우리집 삼돌군 리틀윙님이 패닉에 빠진 마님을 대신하여 이런 저런 것을 알아보더니 SIA 스탑오버 1박을 만들어 돌아온다. 7박 9일 일정이 8박 9일 일정이 되는 순간. 이로서 마지막 날의 발리 블루스가 싱가폴 (윈도우) 쇼핑 스프리로 바뀌게 된 셈이다. 마님 노릇이란 이래서 좋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