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16일 일요일

발리 단상 3 - 빌라 유정, 빌라 유감

* 빌라 유정, 빌라 유감.

탕가유다의 풀빌라에서 잡지를 읽다가 갑자기 눈에 띈 광고! ‘독일의 기술력과 발리의 스타일!’ – 발리 전통식 나무집(큰 것은 빌라라고 해도 되겠다)을 지을 수 있는 Kit이다. 원래는 지을 인력까지 다 제공된다고 하는데 관련 기사를 보니 싱가폴이나 인근 국가의 고객들이 구입해서 자국으로 돌아간 후 구할 수 있는 값싼 노동력을 고용해서 짓는다고 한다. 제일 작은 사이즈가 50 제곱미터였나 30 제곱미터인가 하는 크기인데, 잠시 경기도 어딘가에 땅을 사서 작은 발리식 집을 짓는 상상을 해 본다.(물론 땅을 살 돈 따위 있을리가 없다.) 가을이 오고 있고 한글의 겨울은 꽤 춥다는 사실에서 가슴을 불태우는 이 이야기는 끝이나게 되어있지만 꿈치고도 참 달콤한 이야기 아닌가.:) 어릴적 읽은 미우라 아야꼬의 책에서 작은 땅을 사고, 친절한 목수를 찾아내어 다다미 몇장의 작은 집을 지었다는 얘기를 본 이후로 곰 세마리의 작은 집에 대한 로망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음을 또 한번 깨닫게 된다.(곰 세마리에 대한 로망은 없다.)



모던한 스타일이 아닌 초가지붕의 빌라나 그것보다 더 허술해 보이는 구조물들의 매력은 안팎이 통해있다는 점일것이다. 어디에 있어도, 밤이 되어도 찌는 듯한 ‘우리 동네’와는 달리 가릴것은 가리되 들어올 것은 들어오고 나갈 것은 나가게 하는 구조인 집이면 시원한 여름 저녁을 보낼 수 있는 ‘저쪽 동네’이니까. 거기다 모기까지 없다면! 그건 정말 꿈의 실현이겠구나.
그러나-.
로망은 로망일 뿐... T-T
사실 빌라는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진 굉장히 폐쇄적인 구조이고, ‘사생활 보호를 위해’ 담과 벽으로 둘러쌓인 구조다. 그런 주제에 서로 붙어있어서 이웃이 있다는 것을 모르거나(혹은 이웃이 없거나), 이웃의 가족 구성원과 사생활까지 알게 되거나 둘 중 하나다. 우리는 작년 에바손 사태를 거울삼아 되도록 투명한 이웃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구조상 그러기 어려울 때도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뭐, 판단은 또 우리의 이웃들이 했겠고. 자본주의와 건축가를 탓해야지 어쩌겠냐만서도, 그 말만으로는 넘길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탕가유다에서 두째날 저녁, 옆집에는 한국인 가족이 들어왔다.(혹은 그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나) 활기찬 어린이(어린이들이었을지도)와 부모님. 뭐 그렇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식사를 할 때면 정말 말이 없는 우리는 아주 묵묵하게 빌라에서 밥을 먹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옆집 남자아이의 목소리에 잠을 깬다. 7시 반 정도밖에 안됐는데,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니라고 원망하며 다시 잠을 청하는데 이 녀석 좀처럼 잠잠해지지를 않는다. 분노게이지가 서서히 상승한다. 졸린곰이 왜 졸린곰이겠는가.--; 이 분노는 옆집 어린이가 빌라 안에 있는 엄마에게 화를 내며 고함을 치는 소리에 결국 폭발하고 말아,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쌩하니 빌라는 달려나가 옆집 담에다 대고 할 수 있는 한 가장 싸늘한 목소리를 내게 만든다. ‘저 옆집인데요. 너무 시끄럽거든요.’
묵묵부답.
조용해 진 것으로 봐서 아이는 좀 놀란것 같다. 하긴 옆집에 사람이, 그것도 한국 사람이 있을 줄 몰랐는데 갑자기 그러면 안 놀라긴 힘들겠지. 조금 미안해하며 방에 들어와서 높아진 혈압을 다스린다. 역시 리셉션쪽에 컴플레인을 하는게 더 좋은 방법이었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화를 내고 나면 스스로 내내 찜찜해하는 스타일이라 그날 오전 내내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시간이 좀 지나자 다시 쾌활하게 웃고 떠드는 소리가 좀 작게 들리는 것에 위안을 받는다. 아이는 충격에서 회복하고, 나는 약간의 죄책감과 높아진 혈압에서 회복되고.
생각해 보면 모두가 당연한 일이다. 빌라 구조상 소리가 나면 들리는게 당연하고, 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노는게 당연하고, 일상을 도피해 온 30대는 단 잠을 깨우면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한 것. 그러니 누구를 탓할수도(모두를 탓할수도 있지만 그럼 다 같이 서로 돌을 던지는 수밖에 ^^), 스스로를 자책할 필요도 없다고 스스로 되뇌였다. 소음 관련으로 두번 귀찮고 열받는 일을 당하고 보니 다음 여행에는 빌라 제외를 외치고 싶어지고, 이제 동남아는 그만 갈래(몇 번이나 갔다고..--;)라는 생각까지 들지만 어쩌겠는가. 역시 따뜻한 남쪽 나라는 그립고, 풀빌라가 좋은 것을.



사진은 언제나 즐거운 풀빌라 놀이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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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이 후기]
위 후기는 마님이 쓰고 계신 것이라는 얘기는 이미 전했고, 동시에 아쿠아라는 여행 사이트에도 올라가고 있지요. 그런데 아쿠아에 올라간 이 후기 아래에 바로 그 옆 빌라에 투숙하셨던 분이 댓글을 다셨습니다. 그래서 뒤늦게 나마 정중한 사과의 말씀이 서로 댓글로 오갔습니다.
안그래도 그쪽도 아쿠아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했었는데, 그쪽 분들도 우리 얘기 아쿠아 후기에 올라오는거 아니냐는 얘기들을 하셨다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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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ulip  2005/11/08  
사진으로 봐선 이쁜데, 그런 불편이 있다니 부러움이 2.75% 하락하는군요. (그래도 부러움;)
그나저나 네트는 정말 광대하지 않습니다. -ㅅ-; 




 앨리스  2005/11/28  
마님은 아무래도 적당히 달구어진 돌에 지지는걸 좋아하시는게 아닐까요 ^^
주말에 온천욕을 하고 왔는데 그곳은 노천탕옆 정자의 바닥이 옥돌로 되어있어서
비치타올 하나 위에 걸치면 겨울임에도 한숨 잘수 있을정도로 쾌적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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