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16일 수요일

발리 단상들 - 끝

* 사진을 찍는 것 - 기억을 남기는 일, 기억을 방해하는 일.



마졸리에 식사하러 간 날 기분 좋게 석양을 보고 사진을 찍고 테이블에서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들어왔다. 우리 테이블은 가장 해변쪽에 가까운 테이블은 아니고 그 뒷줄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우리 바로 앞에는 테이블은 없는 좌석. 그 한 무리의 관광객들은 들어오자마자 모두 우리 앞쪽으로 나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완전히 어두워진 것은 아니지만 해는 대강 다 지고 난 무렵이라 계속 플래쉬가 터지고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나오지 않는 식사를 기다리며 앉아있다보니, 아까 사진을 찍고 있던 스스로가 대단히 싫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짜증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을까? 혹은 사진 찍는데 급급해서 스스로의 경험에 마음을 집중하지 않고 있었을까?
아쿠아에 후기나 리뷰를 올려야지라는 마음을 먹으면 어느 정도는 강박적으로 사진을 찍어야 한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이성으로 억제하며 일단 한컷 찍어야 하고, 피곤해도 정리된 침대 먼저 한컷 찍는 때가 많다. 즐거운 의무감 비슷한 것을 느끼는 것 같다. 그건 나쁘지 않다. 리뷰가 아니더라도 잘 나온 사진은 여행의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마음을 기쁘게 만든다. 또 여자라면(아마 남자라도..) 누구나 자신이 예쁘게 나온 사진도 갖고 싶기 마련이겠지.
그런데 어느 순간에는 여행의 목적이 그것인양 주객이 전도되고 지나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디지탈 카메라 광고 카피처럼 ‘기록이 기억을 지배’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아주 좋은 추억의 순간들은 사진과는 다른 때에 있는 경우도 많다. 나는 대부분 구체적인 풍경이나 사실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 순간에 느꼈던 감정과 큰 그림만으로 기억한다. 단 둘이 정원에서 마주 앉았던 룰라의 점심 시간은 맛있는 음식과 바람 소리에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움직이던 그늘로. 늦은 밤 방 앞의 선베드에 거꾸로 누워 별을 보며 남편이 끓여서 서비스해주는 차를 마시는 느긋한 기분과 바람을 기억하고. 라루치올라 앞에서부터 깜깜해진 해변을 둘이 손잡고 오는 밤을. 발리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 남편에게 생일 축하한다고 말하던 상냥하고 아름다운 더 레기안 콘시어지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사진에 들어있는 장면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다 말해지지 않는 감정의 혼합체가 여행의 기억에는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석양의 기쁨은 잠시였고, 어수선함과 아쉬움만 많이 남은 저녁이었다. hu’u에서 기분 좋게 한잔 하고, 호텔에 들어와 남편이 풀코스로 서빙해준 나이트 티에 마음이 풀어 지지 않았으면 길고 길었을.



* Still got the Bali blues.
7일째다. 내일 발리를 떠나 싱가폴로 간다고 생각하면 역시 울적해진다. 조금 익숙해진 우붓을 떠났고, 조금 익숙해진 스미냑을 떠나고, 낯선 싱가폴을 잠깐 들리고 나면 늘 알던 거기, 서울이다. 서울도 조금쯤은 낯설어져 있겠지.
해가 지는 것은 발리도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리워지겠군. 꽃이 떨어지는 소리.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는 곳.



오늘 The Legian은 누군가의 결혼 기념일을 축하하는 식과 리셉션이 있어서 준비가 한창이다. 원래 이런 행사를 유치하지 않는데 단골 손님의 특별 케이스라 양해 바란다는 안내문이 와있었다.(안하면 어쩔거냐..) 누군지 모르겠지만 발리가 마음에 특별한 두 사람이 계속 행복하게 살아가게 되길 빈다.
황혼녘이 되니 여기 저기에 불이 켜지고 멋지게 차려입은 손님들이 레드카펫처럼 등장해서 해변가 칵테일 리셉션을 하고 있다.
그걸 바라보면서 어쩔 수 없이 센티멘탈 모드 ON.
그리고 사실, 부러움 모드도 ON.
여행이 끝나가고 있구나.
p.s. 발리 단상에 들어간 글들은 발리 현지에서 쓴 것과 돌아와서 쓴 것들이 섞여있습니다. 시제가 오가도 그냥 그러려니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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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ulip  2005/11/16  
발리 단상이 끝났으니 다음은 싱가폴 단상인가요? +_+
사실 사진에 대한 것이 그래요. 몇년만 지나도, 사진 들여다보면서
이 때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진을 찍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을때도.
그래도 이쁜 사진보는 것은 즐겁군요. ^^;
ps. 리를오라버니 생일 축하드려요- 




 앨리스  2005/11/28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함께 하는 매일도 특별한 일상이겠지만
같이 떠나는 여행이야말로 하나라는 이름의 우리 라는걸 실감하게 해주지 않을까 합니다.
두분이 함께 한 시간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켜켜이 쌓여가는데 사진은 그저 거들뿐 ^^
늦었지만; 윙오라버니 생일 축하드립니다.
좀 한가해지지면 연말정산집회라도 한번;;

2005년 11월 9일 수요일

D-DAY 플러스

제 핸드폰에는 'D-DAY 플러스'라는 메뉴가 있습니다.
몇년 몇월 몇일 (몇시까지씩이나) 입력해놓으면 오늘이 그날 그 시간으로부터 얼마 지난건지 알려주는 메뉴입니다.
맨 앞에는 "내 핸드폰 생일"이라는 것이 들어있군요. 기본으로 들어있어주는 것인 모양입니다. 뭐 가끔 이 핸드폰 산지가 얼마나 됐나 보는 것도 나쁘지 않기에 지우지 않고 그냥 두었습니다.
두번째에는 당연하게도 "결혼식"의 날자와 시간이 들어있습니다. 어제 확인해보니 563일 지났더군요.
그리고 세번째 항목의 제목은 "티거무비"입니다.
마님과 저는 사실 1990년에 처음 만났습니다. 나중에 '하이텔'이 된 '케텔'의 케록동(kerock)이라는 록음악 동호회에서 만났지요. 그때야 물론 저는 대학생, 마님은 고등학생이고 '사심없이' 만나게 된 동호회 모임자리였기에... (뭐 이런 얘기는 나중에 기회가 있을때 따로 하고)
어쨌든 그런 식으로 알아왔기에 "처음 만난 날" 같은 건 둘다 기억하고 있을 수가 없고, 우리의 "처음"이라고 할만한 날이 바로 이날입니다. "티거무비"
영화 제목입니다. 아시는 분 적겠고, 보신 분은 더더욱 적겠죠. 심지어 극장에서 보신 분이 과연 몇분이나 계실지 모르겠군요. 아기곰 푸우의 조연 케릭터 중에 하나인 "티거"군을 주인공으로 해서 만든 극장판 푸우 영화입니다. 메가박스에서 일주일쯤 상영했을겁니다. 마님과 저는 그걸 같이 보러 갔습니다.
그리고 그날 제가 마님께 "대쉬" 비슷한 것을 한거죠. 제가 날렸던 의미심장한 대사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기회를 줘봅시다.
그리고 그로부터 2000일이 지난거네요.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습니다만, 그 "기회"가 살아남아서 이렇게 하나의 가정을 만들어냈내요. 그때 제가 참 잘했던 것 같습니다. ^^;
어제는 D-DAY 플러스가 말해주는 티거무비 이천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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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ulip  2005/11/09  
이승환의 '천일동안' 이 유행했을 때 천일이라는 숫자에 감탄하곤 했었는데
...부럽군요. ^^;
2천일동안 쭉(이었는지는 몰라도 하여간) 이어오신 인연보다는, 그 노력이 부럽네요.
뭐, 흔한 멘트지만, 2만일 기념일에도 두 분 함께 하실 수 있기를
빌어봅니다. 분명 행복하실 테니 제쳐두고, 오래오래 함께 건강하세요- 




 세상  2005/11/09  
핸드폰.. 좋다.. 부럽다 >.< 

2005년 11월 8일 화요일

발리 단상 6 - 잠못드는 더 레기안의 사연

* 잠못드는 더 레기안의 사연.
더 레기안(The Legian: 호텔명)은 서향이라 방이 좀 어둡다는 점을 빼면 바로 정원을 가로질러 바다로 나갈 수 있어서 좋았다. 스튜디오 스윗은 넓다기 보다는 길고, 현대적이고 고급스럽다. 보스기기 + 아이팟이 두대가 한 객실에 있으니 정말 말 다한것 아닌가. 비치백에 넣어서 해변에 가지고 나가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한 배려가 참 마음에 들었다. 아이팟 스킨도 마음에 들더라. 들어있는 음악은 하도 잡다해서 나와 삼돌군은 음악을 듣기보다는 게임기 용도로(솔리테어) 더 많이 사용한듯 싶지만.. 그렇게 솔리테어에 불타본 것도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하하~ 



해변에 편하고 넓은 선베드가 있다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유원지에서 빌려주는 평상의 럭셔리 버전인 셈인데, 여기가 아주 편해서 더 레기안에서는 메인풀에 한번도 안 들어가고 해변의 선베드에서만 딩굴하며 책을 봤다. 책이 지겨워지면 그늘쪽으로 한껏 몸을 붙이고 바다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보고만 있어도 괜찮았다. 또 한번 바다쪽으로 걸어나가고 싶으면 해변을 어슬렁 어슬렁 걸어나갔다. 볕이 땡볕이어도 별로 개의치 않고.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최고로 호사스러운 일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그 호사를 편안하게 누리게 해 주니 비싼값을 지불해도 좋을 것 같다. 사람마다 다른 여행취향을 가지고 있고 그 수많은 취향중에 나같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원래 우리집 삼돌군은 건강하고(훗훗) 부지런한 사람을 만났다면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많은 걸 보고, 알뜰하게 쓰는 여행도 아주 잘 다녔을 것이지만 모셔야 할 마님과 사는 관계로 한없이 느리고 변덕이 심하고 가산 또한 탕진하는 여행을 다닌다.(올해 저축 목표액은 영원히 달성되지 않을것이다) 그러나 그는, 마님이 자기와 함께 다녀주신다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일단 모셔야할 마님이 있다는 것이 삼돌이의 기쁨이거니와 집에 딱 붙어서 나갈 생각을 안하는 원래의 나를 생각하면 이렇게 다니는게 스스로도 신기하니까.



아뭏튼 위와 같은 생각을 끝도 없이 할 수 있는 것이 더 레기안의 선베드 위이고... 데굴데굴 구르다가 방에 들어와서 보니, 가슴 위쪽이 요상한 V자로 익어있었다. 실상 V자도 아니고 √ <-- 이런 느낌으로 비대칭이니 비키니 자국의 이상한 버전이다. 선블록을 바르면서 얼굴과 목과 등과 등등 신경써서 바른다고 발랐는데 제대로 안 바른 데가 있었던 모양이다. 화끈화끈 간지러워지기 시작한다. 으으. 발리 오기 전에도 태어나서 두번째로 야구장 갔다가 다른데는 다 어쨌든 가렸는데 옷의 깃 모양 따라서 쇄골 아래쪽으로 좁고도 깊게 익어서 고생을 했건만 이번엔 왼쪽 가슴 위쪽이 타격을 제대로 받았다.--; 암튼 가렵고도 아픈 가슴을 달래느라 그랬는지 유독 그날 밤에 잠을 자지 못해서 다음날까지 고생했다.(소량의 음주나 밤에 차를 마셨다는 점등의 다른 이유도 생각해 볼 수 있긴 하지만) 더 레기안의 밤은 파도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는 걸 알게 되었던 계기였기도 하다.
이 글의 교훈: 선베드가 좋아도 너무 딩굴거리지 말자.
추신으로 올해의 책들:
최훈의 ‘MLB Cartoon’ – 네이버에 연재했던 분량+a로 알고 있는데 MLB 문외한인 본인으로서도 재미있게 읽었다. 그림을 자세히 보는게 매우 중요하며, 한번 등장한 선수들이 다른 팀이나 선수의 일화에서 등장하는 것을 찾아보는 재미도 좋은편. 최훈 작가 특유의 유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별로 권할 수 없음.
Snowcat ‘To Cats’ – 스노우캣이 자신과 함께 살고있는 고양이 나옹에게 바치는 책. 스노우캣을 매우 좋아하고, 아주 가끔 “네가 스노우캣이지?”란 말을 지인들에게 듣는 나로서는 그냥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책.(먹고 죽을래도 그런 그림 재주가 없어서..젠장) 사랑이 있고, 애정이 있는 대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대단한 창작의 밑바탕이라는 생각을 한다.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 야구와는 별로 관련이 없는 야구 이야기. 막나가는 이야기 중간중간 “뭐냐 이건!”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다가도 어떤 부분은 칼로 베는 것처럼 예리한, 인상깊은 책이다. 실상 여행과는 별 관계가 없는 이 여행 후기를 쓰게 된 것도 많은 부분 그 책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저 위의 어설픈 발리 음식의 신과의 대화를 써야지라고 강한 동기 부여를 받았고. 독서의 효과는 과연 크고도 놀랍도다.
부활하는 남자들: 삼돌군만 읽어서 나로서는 할 말이 없다. (11월 9일 현재 1권 거의 끝 읽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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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ulip  2005/11/08  
마님의 여행 취향이 딱 제 취향이네요. 저도 삼돌군 있으면 잘 떠받쳐질 수 있는데 -_-;
썬 베드, 밤에 유난히 더 잘들리는 파도소리...
멋져요. -_ㅠ (화상 입으셨다는 얘기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네요;;) 




 앨리스  2005/11/28  
오오.. 강한 염장으로 마무리 하시는군요;;
저야 성격상 이틀만 묶어놔도 답답해서 꿈틀거리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바닷가에 저런 호화 침상에서 뒹굴이라니!!
전 횟집 2층에 이불 말고 앉아서 창밖으로 일출을 봤단말입니다..
역시 저에게 삼돌군이 없어서인가요.. ;ㅁ;
마님 담에는 삼돌군과 즐겁게 지내는 방법 말고
좋은 싹수의 삼돌군 찾는법, 삼돌군 내것으로 만들기, 삼돌군 건강하게 키우기, 삼돌군 업그레이드 하기 등등의 연재도 부탁드립니다-

2005년 11월 2일 수요일

발리 단상 5 - 발리 음식의 신과 대화

* 발리 음식의 신과 대화.

(사진은 없어요.^^)
- 이부오카에서
졸린곰: 사람 많네요. 그것도 동네 사람들이. 확실히 맛있겠군요. 음.. 동네 개까지 저렇게 빤히 쳐다보며 음식을 내놓으라고 압박을 가하다니.
발리식신: 당연하지. 괜히 사람들이 얘기하는 거 아니다.
졸린곰: (냠냠) 맛있네요. 좀 짜긴 하지만.
발리식신: 트집은...

- 라막에서
졸린곰: 분위기 좋네요.(추석날 저녁, 보름달을 볼 수 있는 테라스에서 식사) 근데 서빙하는 언니들이 상당히 콧대높은 듯한..
발리식신: 식당은 맛으로 말하느니라.
졸린곰: 고기는 맛나지만 이 큰새우는 덜익었는데요. 입속이 간질간질 하네.(생새우와 게에 알레르기 있음. 익힌건 오케.) 제 입맛이 좀 싱겁긴 합니다만 역시 조금 짜기도 하고.
발리식신: --;

- 아융테라스에서
발리식신: 맛있지?
졸린곰: 말 시키지 마세요. 먹느라 바쁜거 안보이세요? 분위기도 좋은데 깨지 마시고요. (그릴드 스내퍼 원츄!!!)
발리식신: --+

- 바쿠다파에서
졸린곰: (냠냠이 아니라 아구아구) 맛있네요. 근데 짜다.
발리식신: --+++ 간이 안맞는건 음식이 아니라 네 입인 거잖아!

- 카이잔(일식 한식당)에서
졸린곰: 이게 어떻게 한국음식이라고 할 수 있냐고요!!!
발리식신: 난 발리음식 신이니 거기엔 관여 안한다. --++
졸린곰: 무책임하시기는. 어제랑 그제 먹은 음식은 ‘발리음식’인감요?
발리식신: --++++ 네가 원래 외국 나가서 한국 음식 안먹는다고 했잖아!
졸린곰: 그러게요. 그 원칙을 꺾은 댓가인가. 젠장~

- 마졸리에서
졸린곰: 일본인 관광객에게 둘러싸였네. 저기요.. 좀 비켜보실래요? 바다가 안보이는데..--;;
흑흑.
헉 파스타가 퉁퉁 불어서 나왔군.. 엇 너무 싱거워. 간 안했나봐요.
발리식신: 쌤통이다!
졸린곰: 쳇 소금 치면 되죠.
.....
졸린곰: 엇 뭐야! 계속 싱겁잖아!!!
발리식신: ‘소금통 막아놨지롱.’
(소금을 여러번 쳤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싱거워서 마지막에 확인해 보니 소금이 나와야할 작은 구멍들이 막혀있었다.)
졸린곰: 쪼잔하시긴. 계속 투덜댄다고 복수하는거에요?

- Hu’u에서 (마졸리 식사 후에 이동했음)
졸린곰: 여기 와서 저녁 먹을걸. 귀여운 청년 서버도 있고. 좋고나.
발리식신: 술도 밥만큼 좋잖아.
졸린곰: (광포한 곰 mode) 그런 밥을 주고는 그런 소리가 나오심? 닥치셈! 퍼퍽!
발리식신: 흑흑..

- 롤라에서
발리식신: 어이. 어제는 미안했고, 오늘은 맛있게 먹어라.
졸린곰: 헉 이렇게 맛있는 가스파쵸라니... 샐러드도.. 스튜도.. 심지어 케익도 맛있군! T-T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요. 화해해드리죠.

- 라 루치올라에서
졸린곰: (냠냠) 샐러드 진짜 맛있다. (신과 화해하니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구나..라고 생각) 근데 저기 뒤에분들좀 어떻게 해주실 수 없어요? (호주에서 온것으로로 보이는 10대 아가씨 7-8명 정도가 생일파티하며 꺄악꺄악거리고 있었다. 테이블이 여럿 떨어져 있었는데 남자 얘기 하는거 다들었다...--;)
발리식신: 생일 파티하는 애들을 쫓아내리? 그냥 참고 먹엇! 나 또 짜증내기 전에.

어차피 다 유명한 곳이라 따로 리뷰을 쓸 것 같지는 않으니(남편이 쓸지도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간단하게 글을 써봤다. 대부분 평균 이상의 맛이었지만 영 아니었던 곳도 있었던 식당들. 가장 좋았던 식사는 포시즌사얀의 아융테라스에서의 저녁. 가격도 최고였지만 맛도 분위기도 서비스도 만점이었다. (신혼 여행 다녀온 이후 포시즌에 대한 편애모드가 아니더라도..)
그 다음으로는 롤라에서 먹었던 점심. 그 전날 잠을 거의 못자서 밥맛이 전혀 없었는데 가스파쵸 먹고는 갑자기 식욕 왕성해져버렸다. 소꼬리 스튜도 약간 갈비찜을 생각나게 하는 맛으로 맛있었고 지중해식 샐러드도.
3위는 바쿠다파일까나. ^^ 먹어댔다는 표현이 어울리게 먹었다. 가격도 착하고.
원래 좀 싱겁게 먹는 편이라 발리 가서는 대부분 식사가 좀 짰다. 주문할때 말한다 말한다 하면서도 계속 잊어버리고 투덜대다가 마졸리에서는 궁극의 싱거운 파스타를 맛보았다.--; 남편과 나는 그것이 발리음식의 신의 복수인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나 그래도 막판에 화해하고 왔으니 다음에도 맛있는 식사를 제공해 주실것도 믿어 의심치 않으며..

* 걸을 수 없는 길, ‘인도’로 가는 길.
몽키 포레스트와 스미냑 거리에는 정말 많은 상점이 있어 쇼핑하기 무척 좋을 것 같았는데, 도저히 그럴 마음이 안 들었던 것은 길을 걷기가 너무나 힘들어서 쇼윈도우를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어서였다. 진열장을 보며 걸으려면 최소한 앞의 길이 평탄하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는데 올라갔다 내려갔다하고, 어딘가는 푹 파여서 빠질 것 같고, 걸리면 넘어질 장애물들과 잠자는 개들과 아침에 내놓은 제물까지(밟으면 안되지 않겠는가..) 있으니 길을 걸을때 앞을 봐야지 가게를 들여다보기는 너무 힘들더라. 어쩔수 없이 사선으로 반대쪽 길에 있는 가게를 살짝 훑어보고 재빠른 동작으로 눈 앞의 길을 살피고, 다시 가게를 잠깐 구경하는 식의 매우 집중력 낮은 쇼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집 삼돌군은 '살건 다 사셨지않습니까?'라고 말하겠지만 말이다.^^
한가롭게 걸어서 동네를 구경하지 못하게 하는데는 매연도 한몫한다. 우붓같이 작은 동네에서도 목이 칼칼해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는데, 스미냑에 오니 이건 뭐... 날씨가 좀 더워도 그늘이면 시원하기에 별로 멀지 않은 거리를 걷기도 했는데, 저녁먹으러 식당에 들어가니 메스꺼워진다. 날씨는 더운 곳이지만 바닷가에 있어 통풍이 나쁠리도 없으니 차와 오토바이들이 뿜어내는 매캐한 연기들이 진짜 강적이긴 강적인가보다. 인도네시아 유가도 더 올랐다는데.. 혹시 다들 유사 휘발유 내지는 가짜 휘발유를 사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님 대부분이 경유차? 디젤? 적극적으로 환경보호를 주장하는 사람은 아니어도 이 ‘관광의 섬’이 좀 더 환경보호에 힘써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발리에 도로를 걸을 때 마다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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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tlwing  2005/11/02  
댓글 내지는 호응, 코멘트, 찬사 등등이 아무 것도 없어서 마님께서 다소 상심중... --; 협조들 해주심. 




 Tulip  2005/11/08  
협조중입니다. 핫핫;
음식 사진이 없다는 게 무엇보다 다행인 파트였어요.;
안그래도 요새 아시아 음식들에 꽂혀있는 판에 =_= 




 앨리스  2005/11/28  
역시 체리짱;;;이 추천한 아융테라스가 좋았군요. ㅎㅎ
(아이 B급인간에 대해 솟아나는 애정이란;;)
사진이 없어 아쉽지만 제일 유익한 파트라고 생각됩니다.
저도 언젠가 마님이 올려주신 글덕분에 발리에 잘 다녀왔노라 후기 올릴일이 있겠지요;

2005년 10월 19일 수요일

발리 단상 4 - 아저씨, 당신은 진정 누구신가요

* 아저씨, 당신은 진정 누구신가요.

코마네카 들어가는 첫날, 이부오카에서 점심을 먹고 리조트 셔틀을 시간맞춰 타기 위해 코마네카 리조트로 왔다. 차는 도착했지만 아직 탈 사람이 오지 않아 잠깐을 기다렸는데, 드디어 들어온 것은 일본인으로 보이는 아저씨 한 사람. 그런가 보다 하고 차를 타면서 가볍게 인사를 했다. 탕가유다로 가는 차 안에서 안에 비치된 잡지를 보니 스미냑 레스토랑 추천 리스트 비슷한 것이 났길래(뭐 리스트 자체는 거의 다 유명해서 이미 알고 있는 곳들이었지만) 남편에게 “**도 있고, ****도 있고.. 아, %&%%도 났네”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아주 작게 “아융테라스.”라는 말이 들린다. 낮고 흐릿한 느낌의 목소리. 헉 뭐야 싶다가, 앞에서 레스토랑 얘기를 하니 알아듣고 한마디 했나 싶어 모른척 하고 말았지만 어쩐지 느껴지는 다크 포스였다.
그 분과의 인연은 계속되어 리조트 셔틀을 탄 몇 번 중 대부분을 같이 탔으며, 아침에 조식당에서, 썬베드를 차지 할 수 없었던 점심의 메인 풀 위 식당에서 만나게 되었다. 일행이 없이 계속 혼자 다니는 사람. 게다가 자꾸 눈이 마주치게 되는 위치라 남편과 나는 나름대로 곤란해졌다. 서로 아는 척을 할 것도, 대화를 나눌 것도 아니고 그냥 가볍게 예의만 차리고 스쳐지나가면 편할 낯선 사람의 얼굴이 눈에 익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그런데다가(전혀 모르는 사람을 이렇게 설명하면 예의없지만) 인상을 설명하자면 만화 캐릭터로는 타카하시 루미꼬의 ‘우르세이 아쯔라’의 체리의 느낌이고(아래 이미지 참조), 더 많이 아실 캐릭터로는 ‘Shall We Dance’의 아오키씨를 일단 노화시킨 후 좀 살집있게 불려서 눈은 좀 작게, 그리고 음흉한 기운을 불어넣은 정도의 느낌이라, 바라보면 그렇게 즐거운 분은 아니라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정말 그분의 ‘다크 포스’(^^)를 제대로 본 것이 아니었다.
3일째 되는 날 나와 삼돌군은 전날 썬베드가 없어서 메인풀에서 수영을 못한 한을 풀러 일찍 메인풀쪽으로 나섰다. 다행히도 멀리서 보니 자리가 있었고, 우리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수영장 쪽으로 다가서는데... 그렇다. 거기에 그가 있었다. 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는 사정상 직접 사진을 못 찍었으니 상상하기 쉬우시도록 자료를 덧붙여 보겠다.

아시다시피 탕가유다의 수영장은 이렇게 생겼다.



표시한 위치에 다음과 같이 생긴 분이,



이러한 자태로 누워계시다면....? (그래. 왼팔은 몸에 붙였고 다리는 꼬지 않았지만.)



게다가 계곡 쪽이 아니라 사람들 쪽을 보고 있는 것은 도데체 왜인거야!!!
이쯤 되면 다가가서 ‘아저씨, 당신은 정녕 누구신가요?’ 이렇게 묻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우붓의 시원한 계곡 풍경에 끼어들어간 위와 같은 장면이 민망하기도 하고 보기 썩 좋지 않은지라 썬베드에서 거의 내내 책만 보다가, 나만 손해인 것 같아 기분이 나빠졌다. 그런데 수영장에 있던 외국인들이 하나 둘 헤엄쳐서 수영장 가로 가는 것이 아닌가. 물론 그 아저씨 주변은 포스때문에 다들 범접하지 못하였으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영장 가에 가서 앉으니 좀 낫다. 최소한 한 사람만 떡하니 눈에 띄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 틈을 타서 수영장에서 몇번 첨벙거리고는 부랴부랴 빌라로 돌아왔다. 그 이후로는 그 분을 다시 보지는 못했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상하고도 특이한 아저씨였다. 일본 어디서 무얼 하시는 누구일까. 왜 여기서 저러고 있는 것일까.
참으로 다시 못 볼 유니크한 풍경이었으나 별로 다시 보고 싶지는 않은 풍경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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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ulip  2005/11/08  
역시, 로또당첨으로 무인도나 프라이빗 비치 딸린 빌라로 가는 것이...;
저 체리 알아요. 저런 그림같은 풍경에 그런 생물체가 있었다는 건
저 풍경에 대한 무례라고밖에. -_-;; 




 bluekid  2005/11/09  
답글 읽고 한참 웃었어요.^^
맞아요 Tulip님 말씀이 제가 길게 쓴 저 글의 한줄 요약판! 




 앨리스  2005/11/28  
아아;;
휴양지로 혼자 여행가는건 정녕 커플제국원에게만 허락된것이란말입니까 ㅜㅜ
(체리와 그닥 다를 바 없는 미약한 생물체.. 흑 )

2005년 10월 16일 일요일

발리 단상 3 - 빌라 유정, 빌라 유감

* 빌라 유정, 빌라 유감.

탕가유다의 풀빌라에서 잡지를 읽다가 갑자기 눈에 띈 광고! ‘독일의 기술력과 발리의 스타일!’ – 발리 전통식 나무집(큰 것은 빌라라고 해도 되겠다)을 지을 수 있는 Kit이다. 원래는 지을 인력까지 다 제공된다고 하는데 관련 기사를 보니 싱가폴이나 인근 국가의 고객들이 구입해서 자국으로 돌아간 후 구할 수 있는 값싼 노동력을 고용해서 짓는다고 한다. 제일 작은 사이즈가 50 제곱미터였나 30 제곱미터인가 하는 크기인데, 잠시 경기도 어딘가에 땅을 사서 작은 발리식 집을 짓는 상상을 해 본다.(물론 땅을 살 돈 따위 있을리가 없다.) 가을이 오고 있고 한글의 겨울은 꽤 춥다는 사실에서 가슴을 불태우는 이 이야기는 끝이나게 되어있지만 꿈치고도 참 달콤한 이야기 아닌가.:) 어릴적 읽은 미우라 아야꼬의 책에서 작은 땅을 사고, 친절한 목수를 찾아내어 다다미 몇장의 작은 집을 지었다는 얘기를 본 이후로 곰 세마리의 작은 집에 대한 로망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음을 또 한번 깨닫게 된다.(곰 세마리에 대한 로망은 없다.)



모던한 스타일이 아닌 초가지붕의 빌라나 그것보다 더 허술해 보이는 구조물들의 매력은 안팎이 통해있다는 점일것이다. 어디에 있어도, 밤이 되어도 찌는 듯한 ‘우리 동네’와는 달리 가릴것은 가리되 들어올 것은 들어오고 나갈 것은 나가게 하는 구조인 집이면 시원한 여름 저녁을 보낼 수 있는 ‘저쪽 동네’이니까. 거기다 모기까지 없다면! 그건 정말 꿈의 실현이겠구나.
그러나-.
로망은 로망일 뿐... T-T
사실 빌라는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진 굉장히 폐쇄적인 구조이고, ‘사생활 보호를 위해’ 담과 벽으로 둘러쌓인 구조다. 그런 주제에 서로 붙어있어서 이웃이 있다는 것을 모르거나(혹은 이웃이 없거나), 이웃의 가족 구성원과 사생활까지 알게 되거나 둘 중 하나다. 우리는 작년 에바손 사태를 거울삼아 되도록 투명한 이웃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구조상 그러기 어려울 때도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뭐, 판단은 또 우리의 이웃들이 했겠고. 자본주의와 건축가를 탓해야지 어쩌겠냐만서도, 그 말만으로는 넘길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탕가유다에서 두째날 저녁, 옆집에는 한국인 가족이 들어왔다.(혹은 그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나) 활기찬 어린이(어린이들이었을지도)와 부모님. 뭐 그렇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식사를 할 때면 정말 말이 없는 우리는 아주 묵묵하게 빌라에서 밥을 먹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옆집 남자아이의 목소리에 잠을 깬다. 7시 반 정도밖에 안됐는데,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니라고 원망하며 다시 잠을 청하는데 이 녀석 좀처럼 잠잠해지지를 않는다. 분노게이지가 서서히 상승한다. 졸린곰이 왜 졸린곰이겠는가.--; 이 분노는 옆집 어린이가 빌라 안에 있는 엄마에게 화를 내며 고함을 치는 소리에 결국 폭발하고 말아,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쌩하니 빌라는 달려나가 옆집 담에다 대고 할 수 있는 한 가장 싸늘한 목소리를 내게 만든다. ‘저 옆집인데요. 너무 시끄럽거든요.’
묵묵부답.
조용해 진 것으로 봐서 아이는 좀 놀란것 같다. 하긴 옆집에 사람이, 그것도 한국 사람이 있을 줄 몰랐는데 갑자기 그러면 안 놀라긴 힘들겠지. 조금 미안해하며 방에 들어와서 높아진 혈압을 다스린다. 역시 리셉션쪽에 컴플레인을 하는게 더 좋은 방법이었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화를 내고 나면 스스로 내내 찜찜해하는 스타일이라 그날 오전 내내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시간이 좀 지나자 다시 쾌활하게 웃고 떠드는 소리가 좀 작게 들리는 것에 위안을 받는다. 아이는 충격에서 회복하고, 나는 약간의 죄책감과 높아진 혈압에서 회복되고.
생각해 보면 모두가 당연한 일이다. 빌라 구조상 소리가 나면 들리는게 당연하고, 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노는게 당연하고, 일상을 도피해 온 30대는 단 잠을 깨우면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한 것. 그러니 누구를 탓할수도(모두를 탓할수도 있지만 그럼 다 같이 서로 돌을 던지는 수밖에 ^^), 스스로를 자책할 필요도 없다고 스스로 되뇌였다. 소음 관련으로 두번 귀찮고 열받는 일을 당하고 보니 다음 여행에는 빌라 제외를 외치고 싶어지고, 이제 동남아는 그만 갈래(몇 번이나 갔다고..--;)라는 생각까지 들지만 어쩌겠는가. 역시 따뜻한 남쪽 나라는 그립고, 풀빌라가 좋은 것을.



사진은 언제나 즐거운 풀빌라 놀이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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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이 후기]
위 후기는 마님이 쓰고 계신 것이라는 얘기는 이미 전했고, 동시에 아쿠아라는 여행 사이트에도 올라가고 있지요. 그런데 아쿠아에 올라간 이 후기 아래에 바로 그 옆 빌라에 투숙하셨던 분이 댓글을 다셨습니다. 그래서 뒤늦게 나마 정중한 사과의 말씀이 서로 댓글로 오갔습니다.
안그래도 그쪽도 아쿠아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했었는데, 그쪽 분들도 우리 얘기 아쿠아 후기에 올라오는거 아니냐는 얘기들을 하셨다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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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ulip  2005/11/08  
사진으로 봐선 이쁜데, 그런 불편이 있다니 부러움이 2.75% 하락하는군요. (그래도 부러움;)
그나저나 네트는 정말 광대하지 않습니다. -ㅅ-; 




 앨리스  2005/11/28  
마님은 아무래도 적당히 달구어진 돌에 지지는걸 좋아하시는게 아닐까요 ^^
주말에 온천욕을 하고 왔는데 그곳은 노천탕옆 정자의 바닥이 옥돌로 되어있어서
비치타올 하나 위에 걸치면 겨울임에도 한숨 잘수 있을정도로 쾌적하더라구요^^

2005년 10월 14일 금요일

발리 단상 2 - 우붓에서 길을 잃다.

* 우붓에서 길을 잃다.

비오는 서울을 떠나 발리에 도착해서 집을 찾아 나오니 이미 꽤 늦은 시간. 시아룰을 만나 차를 타고 우붓으로 갔다. 버스-비행기-비행기-자동차 여행은 못할 건 아니지만 괴로운 것이라 30대의 두 사람은 비유쿠쿵에 도착하자마자 그냥 녹아서 흐물흐물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어린이들은 자면서 키가 크고, 어른이 되면 자면서 피로로 녹아버린 몸을 인간 형태로 만들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법인지도 모르겠다. 닭소리에 잠을 깨 보니 실제로 우리는 우붓에 와있었다. 닭들은 우는게 아니라 절규하는 중이었는데, 그때는 그들이 릴레이로 샤우트 창법을 구사한다는 것을 모르던 처라 마냥 신기해하며 “진짜 우붓에 왔네”라고 조금 즐거워했다.



비유쿠쿵의 ‘바나나 팬케익’이라는 이름의 바나나전과 프렌치 토스트로 가볍게 식사를 마치고 아쿠아 지도를 든 채 잠깐 바깥을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그냥 ‘잠깐’이 계획이었는데, 더티덕에서 몽키 포레스트 로드로 이어지는 길을 생각보다 너무 빨리 발견하는 바람에 우리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언덕을 걸어올라가며 아쿠아 리뷰와 후기에서 보던 가게들과 숙소들을 발견하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해가 더 높아지고 더워질 무렵엔 다음 숙소인 코마네카 탕가유다로 갈 셔틀을 탈 코마네카 리조트도 발견해서 셔틀 시간을 확인하며 아쿠아 라운지에서 음료수도 마셨다.



흠, 그때까지는 흐뭇하고 좋았는데 모든 걸 너무 심플하게 생각한 두 사람의 우붓 경험이 너무 미진하다고 하늘이 느끼신 탓인지 Dewista Rd.를 따라 하노만 로드를 지난 것 까지는 좋았는데, 어딘가에서 모퉁이를 잘못 돌고 어디선가의 불운이 결합하여 길.을. 잃.었.다. 우리집 삼돌군은 방향치이고 나는 평범한 인간인데, 어쨌든 둘의 머리로는 도저히 숙소를 다시 찾아낼 수 없는 상황. 우붓 주민들도 우리에게 협조해주지 않아 한 사람이 북쪽을 가리키면 다른 사람은 반대편이라고 말해주는 와중에... 우리는 방향지시를 듣고도 좌-우-우였는지 좌-좌-우로 도는 것이었는지를 헷갈리고 있었다.--; 시간은 정오 정도. 햇살은 마음껏 따갑고 우붓의 작은 골목길들에는 가려줄만한 나무가 없었다. 그렇게 헤메다가 겨우겨우 두 사람 다 빨갛게(맛있게?) 익고, 마님의 짜증이 폭발하기 직전에야 비유쿠쿵을 찾을 수 있었다. 젠장~ 더티덕부터 찾았으면 간단했는데.

어쨌든 우붓의 조용한 주택가 길들에게는 좀 힘들었지만 만나서 반가웠다는 인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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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ulip  2005/11/08  
길을 잃었다는 상황을 빼면 정말 그림같은 장면이어서 너무 이쁘네요.
덕택에 건진 마지막 사진에 대해, 혹은 리를오라버니의 길치능력에 찬사를.;;

2005년 10월 13일 목요일

발리 단상 1

이번 여행 후기는 마님께서 쓰고 계셔서, 제가 따로 쓰지는 않을 예정입니다. 대신, 마님의 승인하에 제홈에도 퍼다 놓도록 하겠습니다. ^^ 따라서 이하의 이번 발리 여행 후기는 모두 마님이 모든 권한을 (물론 평소에도 모든 것에 대한 모든 권한은 마님께 있지만) 리저브드 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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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리에 가기로 했다. 두둥.

사실, 이것은 오래 전에 정해진 것이다. 작년 추석 연휴를 노리던 우리는 가루다와 에어파라다이스의 콤보 공격과 조금 늦은 예약 덕으로 싱가폴 항공의 강 펀치까지 맞아 발리가 아닌 다른 목적지를 물색해야 했고 이러저러한 끝에 코사무이로 갔다. 우기였고 비 덕에 어둡고 추운 기억도 남은 여행이었다. 뭐 다 나빴을리는 없지만. (그렇다면 휴가와 사무이에게 너무 미안하지 않은가!)



그러니 올해는 일찍 싱가폴 항공을 예약하자라는 것으로 여행 준비가 시작되었다. 발권을 7월 말에 했으니 모두 순조로울 수도 있었는데, 역시 젠장. ^^ 원하는 시간의 덴파사-싱가폴 구간은 웨이팅에서 여행시작 3일 전까지 풀리지 않았다.(다른 시간을 발권한 상태로 기다림) 우리집 삼돌군 리틀윙님이 패닉에 빠진 마님을 대신하여 이런 저런 것을 알아보더니 SIA 스탑오버 1박을 만들어 돌아온다. 7박 9일 일정이 8박 9일 일정이 되는 순간. 이로서 마지막 날의 발리 블루스가 싱가폴 (윈도우) 쇼핑 스프리로 바뀌게 된 셈이다. 마님 노릇이란 이래서 좋은 것이다.

2005년 8월 15일 월요일

간만의 요리 - 봉골레

간만에 홈피에 글을 올리게 되는군요.
그동안에 좀 바빴던 얘기는 다음에 봐서 올리기로 하고, 오늘은 다시 요리 이야기입니다. ^^ 한동안 참 바빴습니다. 그래서 그동안에 홈피에도 좀 뜸했고... 라고 하고 보니 올해 들어 이쪽 게시판에는 처음 올리는 글이네요. 저쪽 문화잡담에는 한두번 글을 올리기는 했습니다만.
어쨌든 주말에 이은 광복절까지 삼일 연휴가 되니까 좀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간만에 특별 요리도 해보고, 홈피에도 올릴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요리는 봉골레입니다. 따란~
봉골레 뭐 있나, 올리브 오일에 화이트와인 좀 쳐서 조개 넣고 국수 넣고 볶으면... 네. 되더군요. ^^
그래도 이왕 하는 김에, 전식으로 카프레제도 만들어 보았습니다. 우선 모짜렐라 치즈와 아주 잘익은 토마토를 준비해놓고, 소스를 만들었습니다. 양파와 파프리카를 썰어넣고, 식초, 겨자, 소금, 라임 주스 조금씩 넣고 올리브 오일을 조금씩 넣으면서 저어주었습니다. 거뭇거뭇하게 보이는 향신료는 바질입니다.



잘익은 토마토와 모짜렐라 치즈를 썰어서 접시에 얹고 위에서 준비한 소스를 뿌려주었습니다. 간단하죠? 꽤 맛도 좋았습니다. 그래도 다음번엔 생모짜렐라 치즈를 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아쉽더군요.



이제 본격적으로 봉골레를 만들어볼까요? 봉골레를 만들면서 가장 신경을 많이 썼던 부분은 역시 조개의 해감이었습니다. 전날 오후에 모시 조개를 사와서 해감을 시작했습니다. 소금물에 모시 조개들을 넣어두고 생각나면 한번씩 물을 갈아주었지요. 물을 갈아줄때 보니까 조개들이 꽤 싱싱하더군요. (혀를 길게~ 빼물고 놀고 있었어요.)
끓는 물에 소금와 올리브오일을 조금씩 넣고 모시조개를 넣고 살짝 끓여주었습니다. 조개도 살짝 익고, 물에 조개 맛도 조금 배게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물에 스파게티면을 삶았습니다. 대개는 그냥 물에 면을 삶지만, 봉골레 같은 것을 할때에는 이런 식으로 조개 삶은 물을 써주는 것이 좋다고 언젠가 줏어들어둔 적이 있었거든요.
옆의 프라이팬에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다진 마늘을 볶았습니다. 그리고 원래는 마른 홍고추 같은 것을 쓰지만 없었기 때문에 고추가루를 조금 넣어주었습니다. 옆의 냄비에서 건진 삶은 조개들을 퐁당 넣고, 화이트 와인을 조금 뿌리고 볶았습니다.



적당히 익은 스파게티면을 건져서 찬물에 한번 행구고 소쿠리에 건져서 물기를 한번 빼준다음, 조개를 볶던 프라이팬에 면을 넣어서 같이 볶습니다.



다 되었군요.



늘 그렇듯이 깨끗하게 냠냠 다 먹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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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ulip  2005/08/15  
꼭 이런 시간에 이런 거 올리시고 그러셈? 테러는 이제 그만 -_ㅠ
요새 많이 바쁘신 것 같은데 글 보니 '이러느라 바쁘셨구나' 싶네요.
어련하시겠습니까만, 언제나처럼 맛있는 행복스러워보입니다.
그나저나 조개껍질이 정리된 접시와 활발한 접시, 웬지 모르게 재밌네요. 




 앨리스  2005/08/16  
오랫만의 업뎃은 역시 이것이죠.. 흐흐
갑자기 그랑블루에 나오는 심플하면서도 맛있어 보이던 스파게티가 생각나네요-
언젠가 그 절벽위의 레스토랑에서 먹어보리라...
간단하게 팁 하나 드리면...흐흐......
모시조개 끓인 물을 덜어 두었다가 나중에 면 볶을때도 조금 넣어주면 농도 조절에 좋구요.
샐러드용이 아니면 일반적으로 찬물에 헹구지 않고, 대신 소스랑 같이 볶을 시간을 염두에 두고, 적혀있는 조리시간보다 일분 정도 덜 익힌 상태에서 꺼내어 볶습니다..
그리고 조개를 처음에 볶을때 살짝 소금이랑 통후추뿌리며 밑간해주시고 스파게티 넣어서 볶을때 간을 맞춰주시구요.
- 이상 워커힐 이태리 레스토랑 주방장에게 들은 것입니다.ㅎ
담에 놀러가면 저희도 해주세요- 징징~
(저는 왕새우도 꼭 올려주세요!! 헤헤) 




 litlwing  2005/08/16  
to 튤 / 접시에 놓인 조개껍질... 그러고보니 그렇군. ^^
to 앨 / 조개 끓인 물을 프라이팬쪽으로 투입... 다음에 참고할께. ^^

2005년 6월 27일 월요일

RealFanta2005 스케줄

15일


24:00 심야상영1 (죽을 고생/돌아온 사람들/토레몰리노스73)



16일

13:30 짧지만 판타스틱2

16:00 짧지만 판타스틱3

18:30 우량시민 에드워즈

21:00 레알판타패밀리상영 (빈센조 나탈리의 휑)

24:00 심야상영2 (침입, 사치코의 화려한 생애, 빈센조 나탈리의 휑)



23일

19:00 폐막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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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 2005/07/06

여전히 저의 리스트와 최고의 싱크로율을 자랑하시는군요 +_+

그럼 레알판타에서 뵙겠습니다-





litlwing 2005/07/06

문제는... 예전엔 저렇게 정해놓고 나면 딱 저렇게 다 봤다는건데, 요즘은 취소하게되는 일정이 생긴다는거지. ^^;

암튼 레알에서 보자구.

2005년 6월 13일 월요일

WHAT!

윤도현에 나왔을 때 했던 곡도 이 곡인걸 보면 미는 곡인가 봅니다.


"돼지의 꿈" 이상훈이 작사했고, 곡은 기타리스트가 썼네요. 여기에서 이상훈은 전 프로야구 선수 이상훈 바로 그 사람입니다.



난데없이 갑자기 "왠"이냐고 하시면, 사실은 이 곡을 쓴 기타리스트가 제 친구라서...가 정답입니다. --;

위의 플레이 버튼을 눌러서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게 돈벌만한 짓이 아니죠.

제 친구도 마찬가지고, 작년초까지는 6억짜리 연봉계약을 하던 잘나가던 프로야구 선수도 마찬가지구요.

그렇다고 그 야구선수가 모아놓은 돈이 많아서 이 밴드 활동을 값비싼 취미생활로 하는 것도 아닌 모양입니다.



그저 한계를 느껴서 자존심을 더 상하기 전에 마운드를 내려온 전 야구선수인거고,

제 친구는 한동안 락 음악/밴드활동을 접고 이런 저런 대중가요(?)쪽의 잡일들을 하다가 다시 한번 무대에 선거죠.



사실은 저도 그 친구와 같이 한때 밴드를 했었습니다. 고등학교때였죠. 그럭저럭 대학교 1학년때까지는 같이 한 셈이고, 저야 뭐 별다른 재주가 있는 딴따라는 아니었고 저 기타치는 친구와 또 한명 드럼치는 친구가 (사실 둘다 그때 처음 시작한겁니다만) 워낙 친한 친구였던 탓에 어물쩡 같이 놀았던거죠.

어쨌든 참 재미있는 시절이었습니다. 저희 셋 말고도 밴드의 일원은 두명 더 있었는데 결국 저 기타리스트와 드러머는 아직도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셋은 각자 회사원이 되었죠. (와이키키 브라더즈. 빙고!)



이제는 가끔씩 안부나 주고 받으며 지낸것도 여러해... 얼마전에 저 기타치는 녀석이 새로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계기가 되어서 한번 다시 멤버들이 모였습니다. 밥 먹고 소주 한잔 하고... 2차는 한명의 주동으로 인해 라이브 까페로 갔습니다. 뭐 대략 허름한 지하1층의 까페 비슷한 것입니다만, 드럼세트며 앰프며가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집이었죠. 물론 까페 주인장도 와이키키 브라더즈... 네 맞습니다.

아직 현역 딴따라가 두명 있긴 합니다만, 나머지 멤버들은 기타 잡아본지가 이제 언젠지 아득해져 옵니다. 그나마 어렴풋이 기억나는 코드들은 80년대 말에나 울려퍼졌던 그 시절 그 노래들 뿐이구요.

그래도 술김에 흥을 내서 한번 두들겨 봅니다. 스키드 로우 아십니까? '18 & life' ^^

그럭저럭 버벅여가며 기억을 더듬는데, 그래도 역시 기타 녀석은 현역이라고 제법 능숙하군요. 게다가 18앤라이프의 기타 솔로 멜로디는 우리가 기억하는 그대로를 쳐주더군요. 생각해보면 그때가 우리도 18살이었습니다.



조금 뒤에는 그 까페 주인장께서 후배가 한명 왔다며 콧수염을 기른 아저씨 한분과 같이 무대에 올라오십니다. 우리 드러머가 같이 합주를 해드렸구요. 콧수염 아저씨가 기타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역시 옛날에 좀 하셨던 모양인데 지금은 필리핀에서 숙박업을 하신답니다. 지미 헨드릭스의 퍼플 헤이즈와 본 투 비 와일드를 연주하고 '이제 술좀 먹어야지'를 외치면서 내려가십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남이씨 닮으셨었습니다.



이야기가 쓰다보니 자기 마음대로 나갑니다만... 어쨌든 그런겁니다. 한때의 딴따라들은 이제 회사원으로, 숙박업계로 투신해서는 어쩌다 한잔 술에 '왕년에 그랬었지'를 떠올리기도 한다는 얘기이고.

우리가 떠나온 그 마당에 누군가는 아직도 남아서 '누가 봐도 먹고 살기 어려워 보이는' 저런 밴드 저런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그러고보면 커트 코베인 생전에, 건즈앤로지즈가 빌보드 탑에 오를 때에는 저런 음악을 하면서도 떼돈을 벌기도 했는데 말입니다. ^^





어쨌든 이 글을 적기 시작한 원래의 목표로 돌아와야죠.

나름대로 제법 들을만한 곡(이라는게 제 소감)이고하니 한번씩들 들어보시고

심지어 저 곡이 실려있는 미니 앨범은 5500원에 주문이 가능하고 (심지어 인터파크에서도)

혹시나 시간이 남으시면 라디오 방송국 사이트에 신청곡을 넣어주시면 좋겠다는 노골적인 홍보입니다.



절친한 제 친구가 음악을 계속 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05년 3월 14일 월요일

[잠복근무] 한국의 "여"형사는 어디에까지 와있는가?

"잠복근무"는 분명히 상업영화, "B급 오락영화"를 표방하고 나온 영화다. 그러한 오락영화의 미덕은 되도록이면 영화 보러 온 사람들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충격적인 결말이나 반전도 좋지만, 그것은 밥을 만드는 줄 알았는데 국수가 나왔다 정도의 반전일 뿐이지, 밥을 만드는 줄 알았는데 쇠못을 담아와서 이것을 먹어야한다고는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해서 "B급 오락영화"는 의식적으로 보여주고 싶어하는 부분들이나 무의식적으로(별생각없이) 스쳐가는 장면들 모두에서 지금 이 사회의 다수가 무리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지점이 어디까지인지를 다큐멘타리 필름 이상으로 잘 보여주게 된다. 얼핏 보아도 "마초적 폭력성이 판을 칠 것 같"은 이 액션 코미디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을 점검해보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의미를 가지게된다.



다시 "잠복근무"로 돌아와서 이 영화의 뼈대를 보자. 천재인(김선아)은 인트로에서 인신매매범들의 소굴에 뛰어드는 작전에서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조폭 2인자(김갑수)의 증언을 담보하기 위해 그의 딸을 보호하고 김갑수의 신병을 확보하라는 특명을 띄고 고등학생으로 위장하여 '잠복근무'를 시작하게된다. 학교로 돌아간 그녀는 학원 내의 여러 환경들과 다시 좌충우돌하며 (이른 등교, 골치 아픈 수학, 귀찮게 구는 학원내 폭력, 신경쓰이는 꽃미남, 담임의 과도한 관심, 모의고사 등...) 결국 임무를 완수하게된다.



거의 결론이나 다름없는 이야기가 되지만, 그녀는 결국 '잠복근무'를 떠맡고 있다. 이전에 '살인의 추억'에서 보았던 있는듯 없는듯한 '여경'에서 진일보하였지만, 여전히 그녀는 일선에서 정상적인 수사를 지휘하는 형사라기 보다는 '변장 따위를 걸치고 잠복근무를 떠맡아야하는 위치'이다. 이 일에 항의하는 그녀에게 돌아오는 말은 매번 이렇다. "싫으면 옷 벗어!" 놀랍지 않은가? '싫으면 관둬도 그만인' 위치가 그녀에게 허용되는 유일한 자리이고, 그나마라도 붙들지 않으면 "옷 벗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번 더 시선을 비틀어보자. '옷 벗는다'는 말은 퇴직을 의미하는 매우 보편화된 표현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는 '여성이 돈을 버는, 사회로부터 허용된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길'을 의미하기도 하다. 앞서 '살인의 추억'에서의 여경을 잠시 선배로 들었던 것처럼, 좀더 힘을 가졌던 우리 영화에서의 선배는 "투캅스 3"에서의 권민중일 것이다. 그러나 그 역할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한번 생각해보자. 과연 우리는 그녀를 안성기, 박중훈의 역할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김보성'만큼이라도 기억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일선에 나선 여형사였던 권민중은 결국 오락영화로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결과 그녀는? "옷을 벗었다"



조금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자. 결국 잠복근무와 정상근무의 차이는 간단하게는 "제복과 위장복"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총을 꺼내서 휘둘러댈 수 있는가"하는 차이이기도 하다. "총"이라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대개의 경우 권력이기도 하고 많은 경우에 "남근"에 빗대지기도 한다. 천재인은 "총"을 꺼내들어서 몇번의 위협을 가하기는 하지만 결국 총을 거두고 주먹과 발길질로 돌아간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총질"을 사람에게 해대는 자는 그녀의 위치를 가장 위협하고 억누르고 있는 선배 남자 형사일 뿐이고, 그에게서 머리에 총이 직접 겨눠지는 순간에서 천재인은 영화 최대의 굴욕을 맛본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천재인은 다시 총을 꺼내들지만,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여자가 총을 들면 위험하고 여럿 다친다 내려놔라"이다. 가스통을 들고 '쏘면 다 죽는다'를 강요한 조폭 무리들의 위협은 그렇게 읽힐 수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이 영화에서의 가장 중요한 총 장면은 정체를 드러낸 선배 남형사가 마지막으로 다시 총을 겨눈 순간이다. 여자가 남자를 총으로 억누르는 것을 계속해서 피해간 영화이지만, 그것을 '선과 악'으로 대치시킨 순간에만큼은 그 굴레를 숨기고 "드디어" 역전을 이루는 순간인 것이다. 그리고 그 효과는 앞서 말한 "가장 굴욕적인 순간"을 뒤엎으므로써 극대화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장면에 방점을 찍지 않는다. '몇초 이상 총을 겨눈 악당'이라는 것은 대개의 경우 그렇게 간단하게 총든 손을 쳐냄으로써 역전되지 않는다. 그런 장면은 대개 총을 "겨누자마자" 이루어지는 것이 관습이고, 총을 겨누고 몇초 이상의 정적 또는 대사 진행이 이루어지면 다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장면은 별다른 임펙트 없이 슬쩍 총을 쳐내고 "주먹질"씬으로 넘어가고 있다. 그렇게까지 '선과 악으로 대체'하는 위장막을 펼친 위에서도 '총든 남성을 제압하는 여성'이라는 그림이 관객의 시선에 (무의식적으로든) 거슬리는 것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하지만, 결국 영화의 선택은 그러했다는 점을 인정해야할 것이다. 그러니 일단은 남성 관객들이여 안심하시라. "총이 건재한 이상, 여성이 당신을 제압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총을 놓치지 않도록 열심히 뱀 자라 물개를 드시는 정도면 아직은 큰 문제 없다."



'투캅스 3' 여형사의 실패이래, '살인의 추억'의 여경으로 돌아간 우리 상업영화에서의 여형사는 이제 겨우 '잠복근무'를 허락받았다. 그것도 10분에 한번씩 '옷 벗을래?'라는 위협이나 야유를 받아가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번 임무를 잘 끝낸 그녀에게 돌아간 다음 미션은 "수녀복 입고 노래 부르라"는 또 다른 잠복근무일 뿐이다. 아직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

하지만, 다음 영화가 나오기까지를 기대해보자. 우리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가라는 것까지는 이 '상업영화'의 몫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고니 위버'가 어떤 형식으로든 그 영향을 미쳤듯이, 잠복근무에서의 김선아의 분투는 충분히 눈여겨볼만 하다. 다음 번엔 바추카포를 들고 나올 수 있길 바란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