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 14일 월요일

[잠복근무] 한국의 "여"형사는 어디에까지 와있는가?

"잠복근무"는 분명히 상업영화, "B급 오락영화"를 표방하고 나온 영화다. 그러한 오락영화의 미덕은 되도록이면 영화 보러 온 사람들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충격적인 결말이나 반전도 좋지만, 그것은 밥을 만드는 줄 알았는데 국수가 나왔다 정도의 반전일 뿐이지, 밥을 만드는 줄 알았는데 쇠못을 담아와서 이것을 먹어야한다고는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해서 "B급 오락영화"는 의식적으로 보여주고 싶어하는 부분들이나 무의식적으로(별생각없이) 스쳐가는 장면들 모두에서 지금 이 사회의 다수가 무리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지점이 어디까지인지를 다큐멘타리 필름 이상으로 잘 보여주게 된다. 얼핏 보아도 "마초적 폭력성이 판을 칠 것 같"은 이 액션 코미디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을 점검해보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의미를 가지게된다.



다시 "잠복근무"로 돌아와서 이 영화의 뼈대를 보자. 천재인(김선아)은 인트로에서 인신매매범들의 소굴에 뛰어드는 작전에서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조폭 2인자(김갑수)의 증언을 담보하기 위해 그의 딸을 보호하고 김갑수의 신병을 확보하라는 특명을 띄고 고등학생으로 위장하여 '잠복근무'를 시작하게된다. 학교로 돌아간 그녀는 학원 내의 여러 환경들과 다시 좌충우돌하며 (이른 등교, 골치 아픈 수학, 귀찮게 구는 학원내 폭력, 신경쓰이는 꽃미남, 담임의 과도한 관심, 모의고사 등...) 결국 임무를 완수하게된다.



거의 결론이나 다름없는 이야기가 되지만, 그녀는 결국 '잠복근무'를 떠맡고 있다. 이전에 '살인의 추억'에서 보았던 있는듯 없는듯한 '여경'에서 진일보하였지만, 여전히 그녀는 일선에서 정상적인 수사를 지휘하는 형사라기 보다는 '변장 따위를 걸치고 잠복근무를 떠맡아야하는 위치'이다. 이 일에 항의하는 그녀에게 돌아오는 말은 매번 이렇다. "싫으면 옷 벗어!" 놀랍지 않은가? '싫으면 관둬도 그만인' 위치가 그녀에게 허용되는 유일한 자리이고, 그나마라도 붙들지 않으면 "옷 벗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번 더 시선을 비틀어보자. '옷 벗는다'는 말은 퇴직을 의미하는 매우 보편화된 표현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는 '여성이 돈을 버는, 사회로부터 허용된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길'을 의미하기도 하다. 앞서 '살인의 추억'에서의 여경을 잠시 선배로 들었던 것처럼, 좀더 힘을 가졌던 우리 영화에서의 선배는 "투캅스 3"에서의 권민중일 것이다. 그러나 그 역할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한번 생각해보자. 과연 우리는 그녀를 안성기, 박중훈의 역할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김보성'만큼이라도 기억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일선에 나선 여형사였던 권민중은 결국 오락영화로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결과 그녀는? "옷을 벗었다"



조금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자. 결국 잠복근무와 정상근무의 차이는 간단하게는 "제복과 위장복"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총을 꺼내서 휘둘러댈 수 있는가"하는 차이이기도 하다. "총"이라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대개의 경우 권력이기도 하고 많은 경우에 "남근"에 빗대지기도 한다. 천재인은 "총"을 꺼내들어서 몇번의 위협을 가하기는 하지만 결국 총을 거두고 주먹과 발길질로 돌아간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총질"을 사람에게 해대는 자는 그녀의 위치를 가장 위협하고 억누르고 있는 선배 남자 형사일 뿐이고, 그에게서 머리에 총이 직접 겨눠지는 순간에서 천재인은 영화 최대의 굴욕을 맛본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천재인은 다시 총을 꺼내들지만,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여자가 총을 들면 위험하고 여럿 다친다 내려놔라"이다. 가스통을 들고 '쏘면 다 죽는다'를 강요한 조폭 무리들의 위협은 그렇게 읽힐 수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이 영화에서의 가장 중요한 총 장면은 정체를 드러낸 선배 남형사가 마지막으로 다시 총을 겨눈 순간이다. 여자가 남자를 총으로 억누르는 것을 계속해서 피해간 영화이지만, 그것을 '선과 악'으로 대치시킨 순간에만큼은 그 굴레를 숨기고 "드디어" 역전을 이루는 순간인 것이다. 그리고 그 효과는 앞서 말한 "가장 굴욕적인 순간"을 뒤엎으므로써 극대화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장면에 방점을 찍지 않는다. '몇초 이상 총을 겨눈 악당'이라는 것은 대개의 경우 그렇게 간단하게 총든 손을 쳐냄으로써 역전되지 않는다. 그런 장면은 대개 총을 "겨누자마자" 이루어지는 것이 관습이고, 총을 겨누고 몇초 이상의 정적 또는 대사 진행이 이루어지면 다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장면은 별다른 임펙트 없이 슬쩍 총을 쳐내고 "주먹질"씬으로 넘어가고 있다. 그렇게까지 '선과 악으로 대체'하는 위장막을 펼친 위에서도 '총든 남성을 제압하는 여성'이라는 그림이 관객의 시선에 (무의식적으로든) 거슬리는 것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하지만, 결국 영화의 선택은 그러했다는 점을 인정해야할 것이다. 그러니 일단은 남성 관객들이여 안심하시라. "총이 건재한 이상, 여성이 당신을 제압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총을 놓치지 않도록 열심히 뱀 자라 물개를 드시는 정도면 아직은 큰 문제 없다."



'투캅스 3' 여형사의 실패이래, '살인의 추억'의 여경으로 돌아간 우리 상업영화에서의 여형사는 이제 겨우 '잠복근무'를 허락받았다. 그것도 10분에 한번씩 '옷 벗을래?'라는 위협이나 야유를 받아가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번 임무를 잘 끝낸 그녀에게 돌아간 다음 미션은 "수녀복 입고 노래 부르라"는 또 다른 잠복근무일 뿐이다. 아직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

하지만, 다음 영화가 나오기까지를 기대해보자. 우리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가라는 것까지는 이 '상업영화'의 몫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고니 위버'가 어떤 형식으로든 그 영향을 미쳤듯이, 잠복근무에서의 김선아의 분투는 충분히 눈여겨볼만 하다. 다음 번엔 바추카포를 들고 나올 수 있길 바란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