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붓에서 길을 잃다.
비오는 서울을 떠나 발리에 도착해서 집을 찾아 나오니 이미 꽤 늦은 시간. 시아룰을 만나 차를 타고 우붓으로 갔다. 버스-비행기-비행기-자동차 여행은 못할 건 아니지만 괴로운 것이라 30대의 두 사람은 비유쿠쿵에 도착하자마자 그냥 녹아서 흐물흐물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어린이들은 자면서 키가 크고, 어른이 되면 자면서 피로로 녹아버린 몸을 인간 형태로 만들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법인지도 모르겠다. 닭소리에 잠을 깨 보니 실제로 우리는 우붓에 와있었다. 닭들은 우는게 아니라 절규하는 중이었는데, 그때는 그들이 릴레이로 샤우트 창법을 구사한다는 것을 모르던 처라 마냥 신기해하며 “진짜 우붓에 왔네”라고 조금 즐거워했다.
비유쿠쿵의 ‘바나나 팬케익’이라는 이름의 바나나전과 프렌치 토스트로 가볍게 식사를 마치고 아쿠아 지도를 든 채 잠깐 바깥을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그냥 ‘잠깐’이 계획이었는데, 더티덕에서 몽키 포레스트 로드로 이어지는 길을 생각보다 너무 빨리 발견하는 바람에 우리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언덕을 걸어올라가며 아쿠아 리뷰와 후기에서 보던 가게들과 숙소들을 발견하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해가 더 높아지고 더워질 무렵엔 다음 숙소인 코마네카 탕가유다로 갈 셔틀을 탈 코마네카 리조트도 발견해서 셔틀 시간을 확인하며 아쿠아 라운지에서 음료수도 마셨다.
흠, 그때까지는 흐뭇하고 좋았는데 모든 걸 너무 심플하게 생각한 두 사람의 우붓 경험이 너무 미진하다고 하늘이 느끼신 탓인지 Dewista Rd.를 따라 하노만 로드를 지난 것 까지는 좋았는데, 어딘가에서 모퉁이를 잘못 돌고 어디선가의 불운이 결합하여 길.을. 잃.었.다. 우리집 삼돌군은 방향치이고 나는 평범한 인간인데, 어쨌든 둘의 머리로는 도저히 숙소를 다시 찾아낼 수 없는 상황. 우붓 주민들도 우리에게 협조해주지 않아 한 사람이 북쪽을 가리키면 다른 사람은 반대편이라고 말해주는 와중에... 우리는 방향지시를 듣고도 좌-우-우였는지 좌-좌-우로 도는 것이었는지를 헷갈리고 있었다.--; 시간은 정오 정도. 햇살은 마음껏 따갑고 우붓의 작은 골목길들에는 가려줄만한 나무가 없었다. 그렇게 헤메다가 겨우겨우 두 사람 다 빨갛게(맛있게?) 익고, 마님의 짜증이 폭발하기 직전에야 비유쿠쿵을 찾을 수 있었다. 젠장~ 더티덕부터 찾았으면 간단했는데.
어쨌든 우붓의 조용한 주택가 길들에게는 좀 힘들었지만 만나서 반가웠다는 인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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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lip 2005/11/08
길을 잃었다는 상황을 빼면 정말 그림같은 장면이어서 너무 이쁘네요.
덕택에 건진 마지막 사진에 대해, 혹은 리를오라버니의 길치능력에 찬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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