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8일 화요일

발리 단상 6 - 잠못드는 더 레기안의 사연

* 잠못드는 더 레기안의 사연.
더 레기안(The Legian: 호텔명)은 서향이라 방이 좀 어둡다는 점을 빼면 바로 정원을 가로질러 바다로 나갈 수 있어서 좋았다. 스튜디오 스윗은 넓다기 보다는 길고, 현대적이고 고급스럽다. 보스기기 + 아이팟이 두대가 한 객실에 있으니 정말 말 다한것 아닌가. 비치백에 넣어서 해변에 가지고 나가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한 배려가 참 마음에 들었다. 아이팟 스킨도 마음에 들더라. 들어있는 음악은 하도 잡다해서 나와 삼돌군은 음악을 듣기보다는 게임기 용도로(솔리테어) 더 많이 사용한듯 싶지만.. 그렇게 솔리테어에 불타본 것도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하하~ 



해변에 편하고 넓은 선베드가 있다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유원지에서 빌려주는 평상의 럭셔리 버전인 셈인데, 여기가 아주 편해서 더 레기안에서는 메인풀에 한번도 안 들어가고 해변의 선베드에서만 딩굴하며 책을 봤다. 책이 지겨워지면 그늘쪽으로 한껏 몸을 붙이고 바다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보고만 있어도 괜찮았다. 또 한번 바다쪽으로 걸어나가고 싶으면 해변을 어슬렁 어슬렁 걸어나갔다. 볕이 땡볕이어도 별로 개의치 않고.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최고로 호사스러운 일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그 호사를 편안하게 누리게 해 주니 비싼값을 지불해도 좋을 것 같다. 사람마다 다른 여행취향을 가지고 있고 그 수많은 취향중에 나같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원래 우리집 삼돌군은 건강하고(훗훗) 부지런한 사람을 만났다면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많은 걸 보고, 알뜰하게 쓰는 여행도 아주 잘 다녔을 것이지만 모셔야 할 마님과 사는 관계로 한없이 느리고 변덕이 심하고 가산 또한 탕진하는 여행을 다닌다.(올해 저축 목표액은 영원히 달성되지 않을것이다) 그러나 그는, 마님이 자기와 함께 다녀주신다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일단 모셔야할 마님이 있다는 것이 삼돌이의 기쁨이거니와 집에 딱 붙어서 나갈 생각을 안하는 원래의 나를 생각하면 이렇게 다니는게 스스로도 신기하니까.



아뭏튼 위와 같은 생각을 끝도 없이 할 수 있는 것이 더 레기안의 선베드 위이고... 데굴데굴 구르다가 방에 들어와서 보니, 가슴 위쪽이 요상한 V자로 익어있었다. 실상 V자도 아니고 √ <-- 이런 느낌으로 비대칭이니 비키니 자국의 이상한 버전이다. 선블록을 바르면서 얼굴과 목과 등과 등등 신경써서 바른다고 발랐는데 제대로 안 바른 데가 있었던 모양이다. 화끈화끈 간지러워지기 시작한다. 으으. 발리 오기 전에도 태어나서 두번째로 야구장 갔다가 다른데는 다 어쨌든 가렸는데 옷의 깃 모양 따라서 쇄골 아래쪽으로 좁고도 깊게 익어서 고생을 했건만 이번엔 왼쪽 가슴 위쪽이 타격을 제대로 받았다.--; 암튼 가렵고도 아픈 가슴을 달래느라 그랬는지 유독 그날 밤에 잠을 자지 못해서 다음날까지 고생했다.(소량의 음주나 밤에 차를 마셨다는 점등의 다른 이유도 생각해 볼 수 있긴 하지만) 더 레기안의 밤은 파도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는 걸 알게 되었던 계기였기도 하다.
이 글의 교훈: 선베드가 좋아도 너무 딩굴거리지 말자.
추신으로 올해의 책들:
최훈의 ‘MLB Cartoon’ – 네이버에 연재했던 분량+a로 알고 있는데 MLB 문외한인 본인으로서도 재미있게 읽었다. 그림을 자세히 보는게 매우 중요하며, 한번 등장한 선수들이 다른 팀이나 선수의 일화에서 등장하는 것을 찾아보는 재미도 좋은편. 최훈 작가 특유의 유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별로 권할 수 없음.
Snowcat ‘To Cats’ – 스노우캣이 자신과 함께 살고있는 고양이 나옹에게 바치는 책. 스노우캣을 매우 좋아하고, 아주 가끔 “네가 스노우캣이지?”란 말을 지인들에게 듣는 나로서는 그냥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책.(먹고 죽을래도 그런 그림 재주가 없어서..젠장) 사랑이 있고, 애정이 있는 대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대단한 창작의 밑바탕이라는 생각을 한다.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 야구와는 별로 관련이 없는 야구 이야기. 막나가는 이야기 중간중간 “뭐냐 이건!”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다가도 어떤 부분은 칼로 베는 것처럼 예리한, 인상깊은 책이다. 실상 여행과는 별 관계가 없는 이 여행 후기를 쓰게 된 것도 많은 부분 그 책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저 위의 어설픈 발리 음식의 신과의 대화를 써야지라고 강한 동기 부여를 받았고. 독서의 효과는 과연 크고도 놀랍도다.
부활하는 남자들: 삼돌군만 읽어서 나로서는 할 말이 없다. (11월 9일 현재 1권 거의 끝 읽는 중.)

----------------------------------------------------------------------------------- 

 Tulip  2005/11/08  
마님의 여행 취향이 딱 제 취향이네요. 저도 삼돌군 있으면 잘 떠받쳐질 수 있는데 -_-;
썬 베드, 밤에 유난히 더 잘들리는 파도소리...
멋져요. -_ㅠ (화상 입으셨다는 얘기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네요;;) 




 앨리스  2005/11/28  
오오.. 강한 염장으로 마무리 하시는군요;;
저야 성격상 이틀만 묶어놔도 답답해서 꿈틀거리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바닷가에 저런 호화 침상에서 뒹굴이라니!!
전 횟집 2층에 이불 말고 앉아서 창밖으로 일출을 봤단말입니다..
역시 저에게 삼돌군이 없어서인가요.. ;ㅁ;
마님 담에는 삼돌군과 즐겁게 지내는 방법 말고
좋은 싹수의 삼돌군 찾는법, 삼돌군 내것으로 만들기, 삼돌군 건강하게 키우기, 삼돌군 업그레이드 하기 등등의 연재도 부탁드립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