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다음 목적지로 정한 곳은 그리스였습니다. 대개는 영국에서 프랑스로 나오지요. 저의 첫 번째 여행때도 그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 바로 그리스로 간 것이 바로 전에 언급했던 "돈을 주고 시간을 사는" 일이었습니다.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를 제외한 배낭여행 스케줄이란 거의 보기 어렵습니다. 여행의 동선이라는 것이 대개 그렇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죠. 그 중심에는 유레일 패스가 있구요. 물론 그 나라들에도 멋진 곳이 많습니다만, 지도에서 한쪽 끝으로 치우쳐져 있는 곳들 - 동유럽, 북구, 그리스와 스페인 들도 또한 빼놓기 아쉬운 매력적인 곳입니다. 다만 동선을 짜기가 어렵고, 중간에 긴 선박여행이 놓여있거나 그렇지요. 저번 여행에서는 그중에 그나마 가기 쉬운 동유럽과 북구쪽을 방문했었고 - 언제 그쪽의 얘기도 따로 하죠 - 이번에는 그리스를 선택했습니다. 그리스를 강력하게 추천한 사람도 역시 예의 그 런던 후배였죠 ^^ 다만 문제는 그리스에 들어가려면 이탈리아 남부에서 꼬박 하루반을 기차와 배로 여행해야한다는 사실입니다. 왕복이면 삼일, 아니 4일 정도를 기차안 또는 배안에서 보내게되는데 이게 쉽지 않은 선택이 됩니다. 대개의 배낭여행객들이 그렇게 시간이 많은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영국에서 바로 그리스로 가는 일정이 선택되게 됩니다. 해결책은 "비행기 - Money"인거죠 --;
영국에서 배를 타고 프랑스쪽으로 나와서, 아마도 이러저러한 나라들을 거쳐서 이탈리아, 그리고 이탈리아 남부로 여행을 해서 다시 배를 타고 그리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영국에서 두시간쯤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니 바로 그리스, 아테네더군요. 네, 누가 부인하겠습니까... 돈은 좀 벌어둘 가치가 있습니다.
아테네는 참 묘한 도시입니다. 서울의 강북과 같은 구불구불한 골목이 있고, 큰 빌딩과 아파트 들이 있으며 동시에 정말 신화와 역사에 나오던 건물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건물터"라고 하는게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덕분에 뻔한 것 같은 골목들을 참 많이도 헤맸습니다. 서울 어디서나 남산이 보이듯이 높은 언덕 위의 아크로폴리스가 보입니다만, 길을 찾는데는 별로 도움이 안되더군요 ^^
그리스에 도착하기전, 런던에서 이미 짐작한 대로 아테네의 유적들은 많이 손상되어있습니다. 워낙 오래되었기도 합니다만, 이곳에 있어야함직한 많은 것들을 저는 런던의 대영박물관에서 보고 왔기 때문입니다. 기둥뿌리를 뽑아간다는 말이 있던가요. 표현이 아니라, 글자그대로 그 사람들은 이곳의 "기둥뿌리"를 뽑아다가 런던에 가져다놓고 있습니다. 기둥의 모양에 따라 코린트 양식이니 뭐니 하던 용어들을 배우던 기억이 나십니까? 우리가 그런 것을 사진으로, 그림으로 배울 때 영국 사람들은 그 기둥들을 뽑아다 놓고 아이들을 가르친 모양입니다.
제가 이곳을 방문한 것은 사진의 날자에도 보이듯이 3월중순입니다. 사실 관광철에 이르죠. 그래서 그리스 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서 여름의 "시즌"을 맞기 위한 준비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런 것이겠죠. 많은 철제 보형물과 지지대 같은 것들. 제가 아테네에 도착한 것은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시간이었고, 숙소를 잡고 그러다보니 곧 어두워지더군요. 아테네에서 밤이 되면 높은 언덕위에서 아테네 전체를 굽어보는 바로 이 아크로폴리스는 희고 노란 불빛으로 아름답게 빛을 내뿜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에 올라가서 본 모습은 이런 철제 보형물에 의지한, 대영박물관에서의 풍경을 대조적으로 떠올리게하는, 어쩌면 을씨년스럽기도 한 것이었습니다. 어쩐지 조금은 쓸쓸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아테네의 유적지들은 정말 "신화"를 생각나게 합니다. 그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뒷편의 모습들은 희고 노란 불빛으로 야하게 화장을 하고 손님을 끄는, 그리고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픈 몸을 지탱하기가 힘들어보이는 안된 모습이기도 합니다. 거대한, 화려했던 꿈의 잔해들 그리고 그 남은 조각들을 팔아서 사는 사람들. 그 오래전에 영국 사람들은 그리스에 와서 신전의 기둥을 뽑아갔습니다만, 저는 런던의 뮤지컬 극장에서 그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현재의 꿈을 보고 왔습니다. 아테네는 지나간 시간을 되씹는 것 외에 어떤 꿈을 새로 꾸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걸 알기에 제 방문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겠죠.
다소 씁쓸한 맛이 많이 남았습니다만, 아테네는 역시나 묘한 곳입니다. 오래된 구불구불한 골목을 벗어나면 느닷없이 8차선 도로가 나오고, 공원인가 싶으면 동화책에서 보던 이름의 신전이고, 이 모든 것들을 수천년을 두고 굽어보고 있는 아크로폴리스가 있습니다. 오전 나절에 산책하듯이, 아크로폴리스가 있는 언덕을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그만하면 되었다고 하며 서둘러 아테네를 떠났습니다. 뒤에 나이가 좀더 많이 들어서 가보면 분명히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은, 아직은, 바다가 좀더 보고 싶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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